두 사람의 악다구니를 구경하던 담꾼들이 모두들 고소해했다. 그동안 춘배의 온갖 포악질에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꾹꾹 참아오던 담꾼들이 망신당하는 녀석의 꼴을 보며 ‘십년 체증 내려간 듯’ 시원해들 했다.

“뭘 봐, 요놈들아! 용왕제 전에 짐을 몽땅 부려놔야 탁주 사발이라도 앵겨줄 게 아니냐? 서둘러! 서두르라고!”

춘배가 적안귀처럼 눈을 부라리며 다시금 담꾼들을 몰아치기 시작했다.

“개새끼, 앰한 놈한테 뺌 맞고 누구한테 지랄이여?”

“그러게. 국 쏟고 거시기 데고, 뭔 지랄이랴!”

“옹골 짜다.”

어제 저녁 어스름이 되어서야 북진나루에 닻을 내린 중선 크기의 황포돛배 한 척이 용왕제가 끝나면 다른 경강선들과 함께 한양으로 떠나기 위해 동도 트기 전부터 난리를 치고 있었다.

일천팔백오십팔년 철종 구년 삼월 중순.

청풍현 고을 뒤로 날아갈 듯 솟아있는 비봉산의 눈이 녹아내리고, 겨우내 시퍼렇게 얼어붙었던 강물이 풀리자 남한강 상류 최대의 하항인 북진나루에는 모처럼 만에 크고 작은 짐배들이 포구 그득하게 닻을 내리고 있었다. 멀리 금수산 정수리에는 겨우내 내린 눈이 첩첩이 쌓여 아직도 봄기운은 멀기만 했다. 삼월이라고는 하지만 아직도 강바람은 코끝이 싸하도록 매서웠다.

한양의 삼개(마포)나 용산 나루를 떠난 황포돛배가 한강을 거슬러 삼전도, 광나루, 도미진을 지나면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에 닿는다. 두물머리에서 오른쪽으로 뱃머리를 틀면 양근군으로 오대산 우통수에서 발원하는 천리물길 남한강 들머리다. 계속해서 동남쪽으로 물길을 재촉하면 양평을 지나고 왼쪽 산정으로 천서리 파사성이 보이기 시작하면 이포나루가 나타나는데, 이곳을 지나면 곧바로 세종대왕의 능인 영릉과 천년고찰 신륵사가 있는 여주군이다. 왼쪽 뱃전으로는 나즈막한 봉미산 아래 자리잡은 신륵사와 강을 오르내리는 뱃사람들에게 안식을 주는 신륵사 다층전탑이 강변 절벽 위에 호법신장처럼 우뚝하게 솟아있다. 여기에서는 강원도 원주 땅이 불과 이십여 리, 충주까지는 채 일백 리가 되지 않는다. 여주군을 가로질러 재치나루를 지나고 터준댕이, 당모루, 북탄여울을 힘겹게 오르면 선창마을에 이르고 독바위와 하소여울을 지나면 오른쪽 언덕 위로 가흥창이 서있다. 가흥창은 남한강 최대의 수참으로 한때 충청좌도는 물론 강원도, 경상도 일대의 세곡까지 보관하던 곳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조락하여 충청좌도 북부의 일부 세곡만 관장하고 있다. 가흥창을 지나면 조선 팔도 장사꾼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큰 갯벌장이 펼쳐지는 목계장이다. 가흥창과 목계나루를 뒤로하며 중앙탑이 있는 탑뜰을 지나면 충주목에 당도한다. 충주목은 충청좌도에서 가장 큰 고을로 목사가 있는 곳이다. 충주목에 이르면 남한강은 달래강과 물길을 달리한다. 속리산에서 발원한 달래강은 굽이굽이 사담구곡을 빠져 나와 가무내를 지나 화양동을 비껴 흘러 괴산현·수주팔봉을 지나 탄금대를 마주보고 있는 청금대 앞 합수머리에서 몸을 섞는다.

이곳에서도 청풍의 북진나루까지는 육십 여리 물길을 더 재촉해야 한다. 북진나루는 합수머리에서 왼편으로 뱃머리를 돌려 우륵이 가야금을 탔다는 탄금대를 끼고돌아 조뚠나루를 지나고도 해동갑을 해야만 닿을 수 있다. 충주목을 지나면서부터는 이제껏 뱃길과 판이하게 거친 물길이 시작된다. 며느리소, 정문이여울, 병댕기나루, 까치여울, 꽃바위나루, 포탄여울, 한바위여울, 황강나루, 서창, 용구목여울, 오미나루, 딱지소, 사래여울, 황석나루까지 세찬 여울과 소용돌이를 숨 쉴 틈 없이 넘으면 강을 따라 오른쪽으로 고색창연한 기와집들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다. 여기가 바로 산천경계 수려한 청풍명월의 본향 청풍도호부다.

남한강을 따라 길게 펼쳐져 있는 청풍은 봉황이 나는 듯 하다하여 이름 붙여진 비봉산을 배경으로 강물이 반원형으로 고을을 감싸며 동에서 서로 흐른다. 고을의 좌우로는 인지산과 망월산이 마을을 품에 안은 듯 안온하게 감싸고 있으며, 기슭으로는 읍리를 중심으로 좁고 척박한 농토가 펼쳐져 있다. 청풍은 사방을 둘러보아도 높은 산과 깊은 강이 기암괴석과 어우러져 어느 한곳 빼어놓을 수 없는 뛰어난 풍치를 자랑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청풍호반, 제일강산, 장선협곡, 대덕산구, 서곡단애, 학현취적, 금수구곡, 무암계곡이 청풍팔경이라 하여 절경 중 절경이었다.

청풍은 빼어난 풍광뿐만 아니라 위세 높고 유서 깊은 고을이다. 내륙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산간마을이지만 왕비를 배출한 고을답게 종삼품 도호부사의 관아가 있는 위풍당당하고 자부심 강한 곳이 청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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