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철 수필가

“아범도 촛불집회 참석하고 오느라 그렇게 늦은 게야?”

“아니요. 오다가 버스정류장에서 회사 동료 만나 술 한잔했어요.”

어머니는 그분을 마치 신령시 하는데 이 아들은 그분을 끌어내리기 위해 모여든 군중 속에서 같이 행동했다는 것은 차마 밝힐 수 없었다.

“그랬어. 원 이 나라가 어떻게 되려고 이 난리를 치는지 걱정이다.”

“그러게요. 지금 그분에 대한 민심은 바닥을 쳤어요. 고향인 대구 경북에서도 연일 촛불시위를 하고 심지어 광화문까지 올라와 하야하라고 외치는 사람도 많아요.”

“그분 마음은 오죽하겠니. 아마 새까맣게 타들어 갔지 싶다. 스트레스 받아서 발등이 통통 부었다고 하더라.”

“하야하면 모든 것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분 말씀은 국가의 안위를 위해서 그럴 수 없다고 하는데 국민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사태가 이 지경인 이상 무조건 하야해야 한다는 게 대부분 국민의 생각이에요.”

“아범 생각도 그런겨?”

“네? 어머니 제가 그분 좋아했던 거 잘 아시잖아요. 그래서 회사에서도 그분이 되어야 한다고 떠들다가 동료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어요.”

“그런 일이 있었어?”

어머니의 주름진 얼굴에 슬픈 미소가 스쳐 지나가고 있음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어머니의 친정은 ‘향수’의 고장 옥천이다. 지금 그곳에는 외삼촌도 돌아가시고 먼 외가 친척들만 살고 있다. 외삼촌이 낡은 기와집을 지키고 있을 때는 1년에 한 번씩은 친정 나들이를 하셨다. 물론 내가 모시고 가거나 아니면, 아내의 도움을 받아야 했지만, 그곳에 가면 꼭 들르는 곳이 있었다.

그곳은 그분 어머니의 생가! 어려서 어머니의 손을 잡고 들르면 어머니는 그분의 영정 앞에 묵념을 올리며 나에게도 따라서 하라고 했지만, 마지못해 고개를 숙였던 것으로 기억될 뿐이다. 한때는 관광객이 몰려들어 장사진을 치던 곳이기도 했지만, 며칠 전 TV 화면에 비친 생가의 모습은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더구나 숭모제 지내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과 행사를 강행하려는 사람들의 볼썽사나운 모습도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서라기보다는 우리나라의 보릿고개를 사라지게 하고 근대화의 횃불을 밝힌 그분 아버지의 업적을 높게 평가했었다. 그런 나를 바라보는 동료들의 시각은 제각각이었다. 젊은 사람이 보수색채가 짙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사람이 더 많았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그분도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았으니 국정을 잘 이끌어갈 것이라 믿어 한 표 보태는데 조금의 주저함도 없었다. 더구나 결혼도 하지 않은 독신이고, 형제간에도 일정한 선을 그어놓고 살기에 부정부패 같은 것은 없을 것으로 생각했던 좋은 감정이 조금씩 식기 시작했다.

“어머니, 이제 저도 마음을 바꾸어야 할 것 같아요.”

“무슨?”

“그분을 더는 좋아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어요.”

“사내가 어찌 그려, 한번 좋아했으면 끝까지 일편단심이어야지?”

“보세요. 지금도 광화문 광장에는 성난 수많은 군중이 촛불을 들고 모여들고 있잖아요.”

어머니의 표정은 무척 어두워 보였다. 믿었던 자식으로부터 배신당한 기분을 애써 감추려는 것 같기도 했다. 한동안 말씀이 없던 어머니가 TV 화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이 추운 날씨에 저게 뭔 고생들이람.”

“그러게 말입니다. 하루 빨리 이 난국이 수습되어 안정을 찾았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아범아 시위도 좋고 탄핵도 좋지만,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이들까지 시위현장에 데리고 나오는 것은 좀 심하단 생각이 들지않냐?”

“어머니! 요즘 애들은 여간 영리한게 아니에요. 중학생 정도 되면 옳고 그른 것은 판단할 능력도 생기고 본인이 싫은 일 부모가 시킨다고 억지로 하지도 않아요.”

“아빠! 정말이야? 싫으면 안 해도 돼?”

딸만 둘을 낳고 그만 낳으려고 하다가 어머님의 성화에 못 이겨 마흔에 얻은 초등학교 1학년 아들놈이 끼어들었다.

“이참성! 너 하고는 상관없는 일이야.”

마침 틀어놓은 종편 방송 화면에는 어린 아들을 무동 태우고 행진하는 남성의 모습이 클로즈업되었다.

“아빠 나도 저기 갈래”

“너는 아직 안 돼. 좀 더 크면 데리고 갈게.”

“에이, 좋다가 말았네.”

아들놈이 다시 TV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다.

“참 하늘도 무심하단 생각이 드는구나. 어찌 그리 착한 분이 그런 몹쓸 일에 휘말렸는지 모르겠구나.”

“아마 부모님이 비명에 돌아가시고 사회와 담을 쌓고 살아온 세월이 길어서 그런 것 같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럼,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이 많았어, 이제 그분의 뜻을 펴고 나라를 잘 이끌어가려 하시다가 이 난리를 당했으니 어쩌면 좋을까?”

“다른 방법이 없을 것 같아요. 하야를 하는 수밖에.”

“아빠! 하야가 뭐야?”

우리 이야기에는 관심도 없이 TV에만 정신이 팔려있던 아들놈이 다시 끼어들었다. 뭐라고 설명할까 고심하다가 사전에 나와 있는 그대로 설명해 주었다.

“하야는 시골로 내려간다는 뜻으로, 관직이나 정계에서 물러나 평민으로 돌아감을 이르는 말이란다. 즉, 대통령직을 그만두고 평민으로 돌아간다는 말도 된단다.”

“아! 그렇구나.”

녀석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무엇을 알고 그러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는 웃음보가 터지기 직전이었지만, 진지한 녀석의 모습에 압도되어 꾹 참고 있었는데 그다음 말에는 기어코 웃음보를 터트리고 말았다.

TV 화면 피켓에 최고 권력자는 최순실, 세 번째 권력자는 대통령이라고 쓴 문구가 클로즈업되자 그것을 본 아들놈이 또 생뚱맞게 끼어들었다.

“아빠 최순실이 누구야. 대통령보다 높아? 그러면 나 최순실 할래.”

“뭐야! 이 녀석, 최순실 같은 사람은 없어야 해.”

“그래, 새해에는 그런 사람이 없기를 빌어야지.”

“선생님이 장래희망이 뭐냐고 묻기에 대통령 되고 싶다고 했는데 잘못 말했나?”

“하하하”

“호호호”

마침 떠오르는 아침 햇살이 아파트 창문을 비집고 들어와 밝게 비춘다. 어머니의 주름진 얼굴에도, 침울하던 집안에도 웃음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