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범 시인 청주민예총 사무국장

미국 영화배우 중 클로이 모레츠란 배우가 있다. 한국 나이로 만 19살이다. 영화를 즐기지 않는 내가 그녀에게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한국 TV프로에 출연한 모습을 본 이후이다. 당시 미국은 대선후보인 클린턴과 트럼프의 이야기로 뜨거웠다. 인터뷰 중 민감한 정치적 이야기를 꺼내자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듯 자신의 소신을 이야기했다. 마치 김제동의 언변을 보는 듯 속 시원하게 트럼프를 비판했다. 나는 19살 소녀의 명징한 소신에 놀랐다. 그리고 자신의 소신을 떳떳하게 밝히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한국의 경우는 어떤가? 흔히 공인(公人)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정치적 발언에 대해 매우 민감하고 조심스러워 하는 것이 사회적 분위기다. 2013년 송강호는 영화 변호인 이후 차기작 섭외가 끊겼다는 인터뷰 내용을 본 적 있다.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한 외압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라는 사실과 무관한지는 모르겠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한국 문단의 중심인 한국작가회의의 모든 정부 지원이 끊긴 일이 있었다. 촛불 집회 등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지 않을 경우 지원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 그들의 요구였고 작가들은 이를 당연히 거부했다. 또한, 자랑스럽게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됐다. 많은 사람의 우려 속에 미국은 트럼프 정부가 들어섰다. 클로이 모레츠는 괜찮을까? 그녀는 국가로부터 어떠한 제재를 받을까? 이런 우려를 하는 나 자신이 얼마나 한심하고 비참한가. 혹시, 위협이 있지는 않을까. 불이익을 당하지는 않을까. 이런 불안감을 안고 사는 사회란 얼마나 비참한가. 불행하게도 우리의 현실은 국가가 휘두르는 폭력이 나에게 미칠까 두려워하고 있다. 국가 권력이 내세우는 반공 이데올로기 앞에 반전평화를 노래하고 핵 없는 세상을 이야기하고 노동자의 생존권을, 올바른 역사를, 국민의 안전을, 통일을 이야기하면 모두 빨갱이가 되는 세상이니 말이다.

이런 세상은 권력자와 부자, 언론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당연히 지켜야 할 것이 많고 살아남아야 할 이유가 많을 것이다. ‘내부자’들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습을 온전히 보여준 영화이다. 최순실 국정논단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내부자들은 영화가 아닌 현실이 되었다. 국민이 알아야 할 진실이 언론에 의해 철저하게 왜곡되고 외면당해 왔다. 더 놀라운 사실은 최근 언론의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는 데 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모든 칼끝이 청와대로 향해 있다. 참 놀라운 변화다. 언제 또다시 태도를 바꿀지 모르지만, 언론의 생존 능력에 박수를 보낸다.

어찌되었든, 세상은 한 걸음 나아갔다. 우리 사회가 한 순간에 바뀌지는 않겠지만, 분명 어제와 다른 오늘이 되었다. 이 모두가 국민의 힘이다. 잔잔한 물결 같지만, 언제든 세상을 전복할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국민, 민중이다. 민중의 힘으로 역사는 진보하고 미래를 만든다.

2017년 병신년을 보내며, 우리의 언론이 민중이 되었으면 한다. 살아남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변명 대신 민중의 힘으로 살아남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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