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해피마인드 아동가족 상담센터 소장

누구나 우리는 듣고 싶은 말을 간직한 채 살아간다. 그 말을 듣기 위해 우리는 큰 비용을 내기도 하고 힘든 일들을 마다치 않고 견디며 해내기도 한다. 우리 주변에는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사람들이 많다. 학연, 지연, 혈연 중심으로 움직이는 작은 공동체들이 많기에 그 중 어디에선가 마음을 나누며 지낼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고통에 차 있는 사람에게 진심 어린 위로의 말이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꼭 듣고 싶은 말의 핵심은 인정의 말들일 것이다. ‘잘했다’라는 말, ‘괜찮다’라는 말, 자책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에게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말은 그 상황에 부닥쳐 있는 한 사람을 살려내는 말이기도 하다.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면 살아가는 일이 조금은 덜 고단할 것도 같다.

서울에서 생활하는 딸아이가 긴 휴가를 받아 내려왔다. 독립을 한 지 3년이 된 딸아이는 이제 제법 아가씨 티가 나기도 하고, 직장인 티가 나기도 한다. 딸아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이 아닌 학원으로 갔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기에는 자신에게 있는 재능으로는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며 자신이 일하고 싶은 분야에서 창작자가 아닌 숙련된 기술자가 되겠다며 학원을 선택했다.

나는 대학을 가지 않겠다는 아이의 말이 내심 서운했다. 대학은 지식을 배우는 곳이기도 하지만 관계를 배우는 곳이기도 하다. 지금도 내가 듣고 싶은 말을 솔직하고 따뜻하게 해주는 사람들은 대학 때 같은 동아리를 한 사람들이다. 여전히 그들은 내 삶에서 중요한 타인으로 있기에 그 관계를 맺을 기회를 날려버린다는 것이 아쉬웠다.

대학과 학원을 병행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아이는 한마디로 정리해버렸다. “그럼 비용이 많이 들고 내가 힘들잖아.”

아이의 이 말은 엄마는 능력이 안 된다는 것이고, 엄마나 자신에게 과중한 경제적 부담을 지우면서까지 서로에게 심리적 부담감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다는 말이기도 했다. 아이의 말을 받아들었다.

우리 사회는 이미 초 학력 사회이다. 대학 진학률이 고등학교 진학률을 임박해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하듯 당연하게 대학에 진학한다. 무엇을 공부하고자하는 것이 아니라 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어느 대학을 가느냐에 목표를 두고 있기에 초중고생활은 학업과의 싸움이라고 봐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교과 과정은 대학진학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 당연한 대열에서 ‘멈춤 버튼’를 누른 딸아이가 두고두고 고마웠다. 정말 잘했다. 참 잘했다.

딸아이는 40일의 유급 휴가를 받았다며 그중 절반인 20일은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한다. 마감 시간에 맞추기 위해 새벽까지 일하고 밤을 새우며 일하는 경우가 다반사여서 걱정이 많았다. 걱정을 하는 나에게 걱정하는 것이 엄마의 역할인 것은 알지만, ‘응원해줘’라고 말하는 아이는 어느 대목에서는 엄마인 나보다 어른 같아 당황스러울 때도 잦았다.

‘잘했다 참 잘했네’라는 말은 듣는 사람에게는 기분 좋은 말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 말은 하면 할 수 록 자신에게 더 좋은 에너지를 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새해가 밝았다.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곁에 있는 사람들을 살리는 말들이 아낌없이 오가는 한 해이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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