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통대학교 행정학과

한 해가 저물어 가는 때를 세모(歲暮)라 한다. 세모에 해야 할 일로 조선 중기 성리학자 이언적은 세모삼성(歲暮三省)이라 해 세 가지를 뒤돌아보고 반성할 것을 그의 문하생에게 권했다고 한다. 그 일성(一省)은 남에게 잘못한 것이 없었는가, 이성(二省)은 이기심으로 가족, 친족, 마을 일에 소홀한 것은 없었는가, 삼성(三省)은 욕심으로 양심에 꺼린 일을 하지 않았나 반성할 것을 권했다고 한다.

논어에서는 증자는 일일삼성(一日三省)으로 매일 뒤 돌아보아 반성했다고 한다. 비록 성인의 말씀을 따르지 못하는 필부라도 일 년에 한 번 세모삼성은 해야 하지 않나 생각된다. 일 년을 마무리하는 세모삼성의 관습은 동양이나 서양이나 비슷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유럽 몇몇 국가에서는 크리스마스로부터 12일이 지난 1월 6일까지 십이야(twelve nights)라는 12일 동안 매일 하나씩 반성할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세모의 자기반성과 관련해 도스토옙스키는 자신의 한 작품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도벽이 있는 어느 백작이 한 가정집에서 하는 음악회에 초대를 받아 갔다가 3루블짜리 지폐를 몰래 가지고 왔다고 한다. 이 일로 그 집에 고용된 집시 고아 소녀가 의심을 받아서 추운 겨울날 쫓겨났다. 이에 그 백작은 눈만 감으면 그 소녀의 원망스런 눈방울이 떠올라서 불면증에 걸렸다고 한다.

세모에 해야 할 것으로 이러한 반성과 함께 일을 마무리하는 것도 필요하다. 마무리는 공적인 일 이외에 개인적인 일도 마무리 해야 할 것이다.

경상도 순흥에 황 부자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그는 절약해서 9천900석의 재산을 모은 다음에 그 돈을 과거보러 가는 가난한 서생들에게 나누어주어 재산을 모두 썼다고 한다. 그 황 부자는 연말이 되면 궤에서 차용증서를 꺼낸 뒤에 살기 어렵거나 빚을 갚을 수 없다고 생각되는 사람의 차용증서를 불에 태웠다고 한다. 진정한 의미로 한 해를 마무리하는 모습이다.

조선 시대 마을 공동체의 제의로 고을에 따라서 해원(解怨)굿을 벌였다고 한다. 해원굿은 원한을 가지고 있거나 그로 인해 죽은 사람의 맺힌 한을 풀어서 한 해를 마무리하고자 했다.

얼마 전까지 먹고 마시고 시끌벅적한 일본식 망년회가 있었다. 단어 그대로 보면 연말에 한 해를 보내며 한 해의 온갖 괴로움을 잊자는 뜻의 모임을 의미한다. 그 의미와 어원이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해서 최근에는 송년회 등으로 순화해 사용하고 있다. 이 망년회 풍습이 사라진 뒤에 우리는 세모에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지 못하고 그냥 흐르고 있는 듯하다. 이를 세모삼성의 새로운 풍습으로 바꾸는 사회가 만들어졌으면 한다.

탈무드에 보면 “반성하는 자가 서 있는 땅은 가장 위대한 랍비가 서 있는 땅보다 더 가치가 있다”고 하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많은 사람이 세모삼성의 자기반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반성하면 남의 잘못을 비난하는 일도 줄어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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