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보영 수필가

어디 하나 눈 선 곳이 없다. 색색의 아주 작은 천들을 모아 이은 것임에도 바느질 땀 하나 들쭉날쭉하지 않고 똑 고른 것이 정교하고 아름답다. 이십 여 년을 한 결 같이 즐겨 쓰고 있는 작은 퀼트 가방이다. 그럼에도 전혀 터진 곳이 없는 걸 보면 이음새가 제대로 된 것이 분명하다. 이는 아마도 만든 이의 성품이 반듯하고 가지런한데서 기인한 것이 아닌가 싶다.

손바느질의 기본은 천과 천을 잇는 시접이 똑 고르고 바늘땀이 가지런해야 한다. 시접이 고르지 못하거나 바늘땀이 들쭉날쭉하면 미관상 볼품없어 보이는 것은 물론이고 오래 사용할 수도 없다. 이음새가 제대로 된 것이라야 솔기가 터져 볼썽사나울 일도 없고 그에게 주어진 본분을 다할 수 있음이다.

우리의 삶 속에는 수많은 이음새들이 존재한다. 인간의 삶 자체가 관계의 연속이라고 한다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관계의 이음새, 혈연을 통한 가족 간의 이음새. 사물과 사물사이를 이어주는 이음새, 자연의 순환을 따라 이뤄지는 계절과 계절의 이음새 등.

생명의 신비를 통해 생명의 고향인 여인의 자궁 안에 씨앗이 잉태되고 나면 씨앗과 모체를 연결하는 탯줄이 형성 되며 탯줄은 모체로부터 사랑과 자라남에 필요한 진액을 공급하는 생명 줄이 된다. 이를 통해 티끌만큼이나 작은 수정체는 골격이 만들어지고 몸체가 자라나며 아기라는 꽃으로 피어난다. 엄마와 복중의 아기를 이어주는 탯줄이 견고하지 않다면, 이음새가 터져버린다면 모체로부터 아무것도 공급 받을 수 없어 아기라는 꽃은 피어날 수 없다. 생명의 잉태를 시작으로 탯줄이라는 이음새를 통해 뼈와 살을 녹여내어 길러내는 수고와 사랑이 있기에 모정의 깊이는 가늠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시간의 흐름을 따라 계절은 오고 간다. 계절과 계절 사이에도 이음새가 존재한다. 여름의 끝자락을 물고 가을이 오더니 겨울도 어김없이 가을의 틈새를 이어가며 다가오고 있는 중이다. 긴 겨울이 저물어 갈 때쯤이면 암울한 겨울의 틈바구니를 비집고 눈부신 봄의 물결이 대지를 찬란하게 물들일 것이다. 만일의 경우 이런 순환이 뒤 바뀌어 봄이 와야 할 자리에 가을이 와 버린다면 자연의 질서는 완전히 무너지고 생태계에는 엄청난 혼란이 올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런 자연의 질서가 있기에 우주의 모든 생명체들이 생육하고 번성하며 삶을 영위해 갈 수 있는 것일 게다.

사물과 사물을 이어주는 이음새는 어떠한가. 초가집들이 옹기종기모여 삶의 근간을 이루던 때가 있었다. 그 시절에는 매년 가을 추수가 끝나고 나면 그 해에 거두어들인 볏 집으로 이엉을 엮어 지붕을 덮곤 했다. 이 때 이엉을 촘촘하게 엮는 일도 중요하고 지붕 꼭대기를 중심으로 위에서 아래로 결대로 가지런히 틈새가 벌어지지 않게 덮어야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지붕의 이쪽과 저쪽을 이어주는 이음새의 역할을 하는 용고새를 덮어주지 않으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 용고새를 덮는 과정 중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게 양쪽 지붕을 중심으로 한 가운데 제대로 덮어주어야지만 틈새가 생기지 않아 비바람과 눈보라를 견뎌 낼 수 있음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이음새는 어떤 것일까. 이는 소통이고 포용이다. 소통의 부재로 하여 작은 틈새가 생기면 그 곳을 통해 바람이 드나들기 시작한다. 이를 간과해버리면 결국에는 작은 바람이 모진 칼바람이 되어 관계를 허물어트리고 만다. 너와 내가 모여 작은 집단을 형성하고 이들 구성원들이 모여 사회가 되고 나라가 되며 세계가 된다. 그 속에는 어쩔 수 없이 집단들을 이끌고 갈 우듬지를 필요로 한다. 우듬지와 밑동의 이음새가 튼실하지 않으면 우듬지는 말라 버릴 수밖에 없다. 우듬지에 서 있는 이들일수록 우듬지를 받쳐주는 밑동이 있기에 우듬지가 있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하리라. 이를 위한 가장 큰 덕목은 소통과 포용이며 너와 나의 다름을 인정하는 일일게다.

우리의 삶속에 존재하는 이음새들이 어떻게 제 역할을 다하느냐에 따라 아름다운 관계가 형성 되고 세상은 빛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음새의 본질은 아우름이 아닐는지.

나는 어떤 과정을 거처 여기에 와 있을까. 유년기를 거처 노년기에 이르는 동안 튼실한 이음새 위에 견고한 토대를 놓으며 여기까지 왔을까. 돌이켜보면 내게 허락된 삶의 길목마다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었음에도 이를 미처 알지 못해 아주 중요한 것들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모른다. 소년의 한 때를 충실히 살아내지 못하면 청년으로 가는 이음새가 튼튼하지 못하다는 것을, 열정으로 뜨거운 젊을 날들을 허송한다면 결코 아름다운 노년을 맞이할 수 없다는 것을 아프게 깨닫는다.

내게 폭설이 내렸다. 아프면서도 찬란한 훈장이다. 지난 삶의 뒷면을 반추해보면 벌레 먹은 흔적들도 있고 빛나는 부분들도 있다. 나는 이 모두를 사랑한다. 삶이란 그리 녹녹한 것이 아니고 그냥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열과 성을 다해 살아내야 하는 것이기에 모두가 소중한 것 아니겠는가. 이제 남은 삶을 살아내기 위해 나와 함께 하는 이들과, 나를 거처간 이들과의 관계에서 혹여 불협화음이 일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며 인연의 소중함. 가족의 소중함. 내가 발 디디고 서있는 이 땅의 귀함을 마음 판에 새기며 이음새가 터지지 않도록 보듬고 가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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