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충주농고 교장 수필가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가을이 익어 가면 나에게 남기고간 흔적은 또 하나의 나이테가 늘어난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소중한 삶이었기에 후회 하지 않으려 무던히도 애써왔지만 남는 것은 떨어지는 낙엽처럼 이별의 아픔이 있을 뿐이다. 그런 세월이 물같이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여 그 무게에 놀라기도 했다.

나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초등학교를 다녔다. 1945년 해방이 되고 격동의 70년을 살아오면서 참혹했던 한국전쟁을 겪었고, 농경사회의 가난한 질곡(桎梏)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산업혁명을 경험했다. 인간의 삶이 발길에 부서지는 낙엽처럼 되어서야 되겠는가. 사랑으로 이루어진 결혼식도 끝난 자리에는 꽃잎 꽃가루가 남고, 야영객이 놀다간 자리에도 쓰레기가 남는데 인생이 살다간 자리에 어찌 흔적이 남지 않겠는가.

미국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은 잡초를 뽑고 꽃을 심다간 사람이라고 미국인들은 말한다. 우리 대통령도 잡초를 뽑아 아름다운 꽃만을 심었더라면 촛불의 함성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을…….

시(詩)를 쓰는 이는 시로 말하고, 음악가는 명곡(名曲)을 남기고, 화가(畵家)는 이름 있는 그림을, 서예가는 명필(名筆)을 남기고 간다. 그렇기에 그리스의 철학자 ‘히포크라테스’는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명언을 남겼다.

이렇게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행한 행실은 반듯이 흔적으로 남는다. 어떤 이는 악(惡)하고 험한 행실이 흔적으로 남고, 또 다른 어떤 사람은 자랑스럽고 고귀한 흔적을 남겨 후세사람들의 귀감이 됐다.

구한말 매국노 이완용은 지금까지도 비열하고 더러운 이름으로 남아 있지만 조국을 위해 제 한 몸을 초개와 같이 불사른 안중근, 윤봉길 의사는 자랑스러운 애국지사로 그 이름이 빛난다. 나랏일을 다스리는 리더는 국민을 위하여 무엇을 어찌해야할지 선현(先賢)들의 살신성인(殺身成仁)의 흔적을 귀감으로 삼아야 하리라.

영하의 추위에도 광장의 100만 촛불은 질서 있는 평화 행진이었다. 한국민의 수준 높은 시민의식을 보여주었다. 세계가 한 국민의 촛불시위문화를 높이평가하고 있다.

병신년 가을이 남기고간 촛불의 민의(民意)는 암울한 정치 현실을 개혁해 이 땅에 새 희망의 역사를 쓰고자함이다. 정치리더는 촛불민심을 바로보지 못하고 당리당략(黨利黨略)으로 경거망동(輕擧妄動)해 역사에 오점을 남기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꽃은 피고지면 다시 필수 있지만 우리 인생은 한번가면 꽃처럼 다시 필수는 없다. 피는 꽃에 눈길이가고 지는 꽃에 마음이 가듯 지난날의 아픔과 아쉬움은 가을에 남기고간 촛불의 열망은 역사에 남을 영원한 흔적이 아닐까. 문학이 정서적 미학을 이끄는 인간학이라면 수필은 깨달음과 각성(覺醒)의 문학이라 생각한다. 살아온 모진세월의 변화와 시대정신을 나의 수필집에 차곡차곡 흔적(痕迹)으로 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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