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현경 2016 인생나눔교실 멘토

올해도 어김없이 가을은 찾아왔다. 20대엔 제일 좋아했던 계절이었는데 언제부턴가 쓸쓸하고 허무해 건너뛰고 싶은 계절이 되었다. 차라리 겨울은 봄을 기대하지만 가을은 더 추운 겨울이 버티고 있으니….

그런데 올해는 길가에 나뒹구는 낙엽에게서 할 일을 다 못하고 떠나는 아쉬움이 아니라 제 몫을 다하고 기꺼이 떠나는 당당함이 느껴진다. 아무래도 ‘인생나눔교실’ 때문이 아닌가 싶다.

중·고등학교시절부터 대단하진 않지만 꾸준히 봉사활동을 해왔고, 어른이 돼서도 의미있고 보람있게 살고 싶다는 생각에 대전 점자도서관에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도서 녹음봉사를 시작한 지 12년째가 되었다. 지금은 회사를 그만두었지만 일을 하고 있을 때도 점심시간을 이용해 일주일에 한 번씩 녹음봉사를 꾸준히 해왔다. 처음 시작할 때만해도 내가 좋아하는 책도 읽고 또 앞을 못 보는 분들에게 도움도 된다고 생각하니 매우 뿌듯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가끔은 혼자 녹음실에서 하는 이 일이 외롭고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인생나눔교실을 통해 멘티들과 직접 만나 교감하고 소통하는 기쁨은 상상 이상이었다.

6월 마지막 주 워크숍을 시작으로 인생나눔교실의 대장정이 시작되었다. 강의를 준비하던 7월, 익숙하지 않은 강의 스타일과 처음 해 보는 PPT작업,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다른 멘토와 튜터와의 조율, 내 자신의 능력에 대한 비관적 생각 등으로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이 수업을 내가 꼭 해야 하나! 끝까지 해 낼 수 있을까? 차라리 지금 그만두는 게 좋지 않을까? 정말 심각하게 고민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고민까지도 추억이 됐다.

인생나눔교실은 두명의 멘토와 한 명의 튜터가 한 팀을 이뤄 강의를 준비하고 진행해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 ‘한 팀’이라는 과제가 인생나눔교실을 준비하면서 가장 든든하지만 가장 힘든 부분이었다. 함께 무엇인가를 한다는 건 서로 의지할 수 있는 버팀목이 된다는 좋은 점도 있지만 타인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있는 관용과 맞지 않다고 생각되는 의견을 기분 나쁘지 않게 거절할 수 있는 말솜씨와 설득력을 필요로 했다.

나에게 그런 능력이 부족했던 관계로 강의를 준비하면서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강의에 대한 어려움보다 사람에 대한 피로감으로 너무도 힘들게 준비를 하고 드디어 8월 첫 강의에 들어갔다. 두어번의 강의를 끝낸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내가 인생의 멘토로서 멘티들에게 나눔과 소통을 말할 자격이 있는가’. 내가 하지 못하는 걸 남에게 하라고 할 순 없었다.

나부터 바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음을 비우고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려 노력했고 우리 멘토들부터 서로 이해하고 소통하자는 생각을 했다. 그러자 그 때부터 훨씬 더 마음이 편해졌고 공연히 의심하거나 무시하거나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지 않게 되었다. 지금은 ‘우리는 한 팀’이라는 마음으로 똘똘 뭉쳐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다.

‘인생나눔교실’은 가지마다 주렁주렁 매달린 감처럼 내 가슴을 보람이라는 이름의 열매로 가득 채우고 있다. 그 감을 하나씩 따 먹다가 감이 다 떨어질 때쯤 새로운 감나무를 심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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