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기원전 296년 전국시대. 초나라 회왕(懷王)은 강대국인 진(秦)나라와 전쟁을 피하고자 하였다. 마침 진나라의 모사꾼인 장의(張儀)가 나타나 온갖 감언이설과 궤변과 변설을 늘어놓자 그만 마음을 쏙 빼앗기고 말았다. 진나라와 국교를 맺기 위해서라면 장이가 시키는 대로 어느 것이라도 흔쾌히 허락하였다. 그러자 국고가 바닥이 나고 국력이 소진되었다. 그것도 부족하여 진나라의 위험한 초대에 아무런 준비도 없이 응하여 그만 포로로 잡히고 말았다. 이후 진나라 땅에서 쓸쓸히 여생을 마감하였다.

그 아들이 초나라 왕위에 오르니 양왕(襄王)이다. 하지만 양왕은 이전 아버지의 불행한 기억들을 까마득히 잊은 채 간신들을 가까이 하고 음탕한 생활에 빠져 정치를 팽개치고 있었다. 이틈을 놓치지 않고 진나라가 초나라의 영토를 야금야금 집어 삼켰다. 결국 진나라 군대가 쳐들어오자 양왕은 수도를 버리고 남쪽으로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그 와중에 신하인 장신(莊辛)이 왕께 아뢰었다.

“군주께서는 혹시 왕잠자리를 보셨습니까? 다리가 여섯 개이고 날개가 네 개 달린 곤충입니다. 공중을 날아다니며 모기나 파리를 먹고 목마르면 이슬을 빨아먹고 삽니다. 왕잠자리는 자신은 걱정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곤충들과 다투지 않고 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뭇가지 위에 내려앉으면 동네아이들이 잠자리채로 잡으려 하고, 땅에 내려앉으면 개구리가 날름 잡아먹는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습니다. 군주께서는 꾀꼬리를 아실 겁니다. 무성한 나무 위에 둥지를 틀고 밭에 낱알을 쪼아 먹으며 사는 새입니다. 꾀꼬리는 하늘을 우아하게 날아다니는데 이는 스스로 아무 근심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새들과 다투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누가 알겠습니까? 자신은 전혀 모르는 사냥꾼이 나타나 총으로 자신을 쏠 줄 말입니다.”

이야기를 듣고 있는 양왕은 의아해 하는 표정이었다. 이 사람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가 하는 표정이었다. 그러자 장신이 말을 이었다.

“하늘을 나는 두루미 역시 스스로 아무 걱정이 없습니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다른 새들과 다투며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루 종일 강가에서 먹이를 찾으며 즐겁게 놉니다. 하지만 사냥꾼이 나타나 아무런 원한도 없는 자신을 총으로 쏘아 잡아갑니다. 사냥꾼의 요리감이 되고 마는 것이죠. 두루미는 자신이 이렇게 될 줄 조금이라도 알았겠습니까?

왕위에 올라 절제를 모르고 음탕한 생활을 일삼다가 끝내는 적군의 발에 밟혀 비참하게 죽은 왕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지금 우리 초나라가 진나라에게 원한을 진일이 없는데도 진나라의 공격을 받아 이렇게 처량하게 수도를 버리고 피난을 갈 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우리가 누구와 다투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쫓기는 신세가 될 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군주이시여, 제발 정신을 차리십시오. 나라를 제대로 돌보셔야하지 않겠습니까?”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양왕은 무엇을 알았다는 것인지 그만 얼굴이 창백해지며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전국책(戰國策)’에 있는 고사이다.

망양보뢰(亡羊補牢)란 양을 잃고 우리를 고친다는 뜻이다. 일을 그르친 뒤에는 아무리 후회를 해봐도 소용이 없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백성을 행복하게 하는 군주는 자신에게 엄하고, 백성을 불행하게 하는 군주는 남에게 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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