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주 충북수필문학회장

예산에 있는 임존성(任存城)은 서천 건지산성, 세종시 운주산성, 홍성 학성산성 등과 함께 백제부흥군의 주요 거점으로 알려진 주류성으로 추정되고 있다. 말하자면 멸망한 백제 부흥을 위한 임시수도라고 할 수 있다. 주류성은 백제 왕족 복신, 승려 도침, 흑치상지 장군 등이 전열을 재정비하고, 신라군의 군량 수송로를 차단해 나당연합군을 괴롭히던 거점이라고 한다. 그리고 백제 부흥에 실패한 최후의 3천여명이 토굴 안에서 몰살을 당했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일본서기에 전해지는 주류성의 확실한 위치는 아직도 고증해내지 못하고 있다. 나도 궁금증을 견디지 못하고 실제로 주류성일지도 모르는 임존성을 찾아 나섰다.

임존성 가는 길은 봉수산 자연휴양림에서 가파른 등산로를 약 1시간 정도 올라 성의 북장대지에 이르는 방법도 있고, 봉수산 대련사에서 서북쪽으로 오르는 오솔길도 있다. 대련사에서 오르는 오솔길을 택했다. 안내판은 해묵어 글자가 희미하기는 했지만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지난밤 내린 눈으로 길이 약간 질척거렸다. 길은 가파르지도 않고 메마르지도 않아서 걷기에 좋았다. 어제 내린 눈이 군데군데 녹지 않았지만 날은 포근했다. 미세먼지도 산이라 심하지 않았다. 올라갈수록 오솔길엔 솔잎이 깔리고 낙엽이 있어 양탄자를 밟는 느낌이었다.

오솔길 왼쪽으로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이 있었다. 감나무, 오래 묵은 뽕나무, 앵두나무가 있었다. 집터였는지 우물터와 축대도 보인다. 사람들이 살림을 살던 터전일까? 군사시설이었을까? 사찰의 부속건물일까? 농지로 판단되는 곳은 보이지 않아 민간의 터전으로 보기는 어려웠다. 그냥 궁금증만 뒤로 하고 올라갔다.

임존성은 대련사에서 멀지 않았다. 20분 정도 천천히 걸으니 남문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대련사가 백제 부흥운동의 주역인 도침대사가 세운 절이니 임존성에 가까이 있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임존성에 오르면 백제 부흥운동을 주도했던 도침대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대련사를 세운 도침대사는 백제가 멸망하자 왕족이던 복신과 함께 일본에 있던 왕자 부여풍을 왕으로 삼아 독립 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추도록 하고 백제부흥운동을 전개하였다. 승려인 도침은 복신과 흑치상지와 더불어 백제의 유민들을 모아 임존성에 웅거해 나당연합군에 저항하여 그 세력을 점차 넓혀갔다. 당나라 장군 유인궤도 무시하지 못하였고, 한때 옛 수도 사비성을 포위할 정도로 위세를 떨쳤다.

그러나 백제부흥운동을 주도해 오던 복신과의 반목으로 그에게 도리어 죽음을 당했다. 게다가 흑치상지가 유인궤에게 포로가 되어 당에 들어가 전향하여 도리어 부흥군을 공격하는데 앞장섰다. 부흥군의 세력은 점점 약화됐다.

복신의 부흥운동은 백제가 아니라 왕족으로서 영화에 목적을 둔 것이 아닌가 싶다. 정권이 사리사욕을 염두에 둘 때 정당한 정권이 아니라 남을 지배하려는 패권이 된다. 정당한 정권은 백성에게 사랑을 나누어주고 하늘의 은총을 얻어 성공한다. 진심으로 하늘의 뜻을 얻고 백성에게 감동을 주는 방법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는데 일단 정치에 손을 대면 눈이 멀어버린다. 답답한 노릇이다. 어느새 나는 너른 남문지에 서서 여전히 아름다운 백제의 산하를 내려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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