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승의 자잘한 세상이야기]어머니 사진을 보다가
[정연승의 자잘한 세상이야기]어머니 사진을 보다가
  • 충청매일
  • 승인 2016.11.15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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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충북작가회의 회장

제주도에 다녀온 사진을 정리하다 유난히 눈에 띄는 사진 한 장에 눈이 들어왔다. 노랗게 익은 귤나무 아래서 찍은 어머니 사진이었다. 평소 어디를 가셔도 ‘다 늙어빠진 늙은이가 사진은 찍어 뭐하냐? 젊은 니들이 찍어야 사진도 이쁘게 나오지’라며 한사코 손사래를 치시곤 했었다. 그런데 그날은 아주 촌스러운 포즈로 당신 스스로 나무 아래 서서 탐스러운 귤을 한 손으로 잡으며 사진 찍기를 원하셨다. 서귀포에 있는 어느 절집 귤나무 아래서였다. 좀처럼 없던 일이라 나는 정성을 다해 몇 컷을 찍었었다. 그리고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우리 삼형제는 얼마 전 아버지, 어머니 형제분(작은아버지, 외삼촌 내외분)을 모시고 제주도 여행을 갔었다. 여든을 훌쩍 넘기신 부모님께서 더 연로해져 움직이기 힘들어지기 전에 진작부터 한번 다녀와야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러나 모두들 시간 맞추기가 여의치 않아 쉽사리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겨우겨우 떠난 여행이었다. 부모님과 형제분들은 정말 기뻐하셨다. 그깟 구경보다도 형제분들이 함께 모여 먹고 자고 떠들고 다니는 것이 더 좋으신 것 같았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진작 오지 못한 것이 죄송스러웠다. 한편으로는 ‘언제 또 가족이 이렇게 모여 여행을 할 수 있을까…… 혹여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이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서글픔이 몰려와 마음 한쪽이 아리기도 했다. 그렇게 즐거워들 하는 모습을 보며 무사히 여행을 마쳤다.

그러고는 제주도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런데 며칠 전 작은외삼촌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여행이 정말정말 재미있었다며 제주도에서 찍은 사진을 보내달라는 말씀이셨다. 아마도 기다리고 기다리다 더는 기다릴 수가 없어 연락을 한 것이었다. 그래서 넣어두었던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사진 안에는 잊고 있었던 제주도의 세세한 이야기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고스란히 들어있었다. 사진을 보며 무엇보다도 흐뭇했던 것은 모두들 표정이 한결같이 밝고 즐거워하는 모습들이었다. 그런 사진들을 보니 보는 사람도 덩달아 즐거웠다.

그러다 귤나무 아래서의 어머니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사진 안에 있는 어머니는 내가 평소에 보아오던 그런 어머니가 아니었다. 사진 속에는 여든이라는 세월이 고스란히 담긴 여느 할머니들처럼 우리 어머니가 있었다. 나는 그동안 어머니의 환상을 봐온 것이었다. 그리고 그 환상을 그대로 현실처럼  믿고 있었던 것이었다. 갑자기 가슴 한쪽이 무너지며 휑한 바람이 스쳐지나갔다. 그동안 나를 지탱해주고 있던 무언가가 일시에 빠지며 주체하기 힘들 정도로 허전한 느낌이 몰려왔다.

나는 이제껏 우리 어머니는 다른 어머니들과 다르다고 생각했다. 아직도 당신 살림은 물론 자식들 밑반찬까지 챙기는 어머니를 보며 다른 동년배에 비해 젊고 정정하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 어머니는 언제까지나 뭐든 다 해주실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그런데…… 사진 안에는 아주 연로한 노인이 계셨다. 우리 어머니도 다른 어머니들처럼 그 연세를 고대로 담고 있는 연로한 어머니였던 것이다. 사람들이 하던 ‘너의 어머니는 정말 고우시다’, ‘너의 어머니는 예전 고대로다’라는 말은 인사치레일 뿐이었다. 사진 속에는 아주 늙어버린 노인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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