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주 충북수필문학회장

부소산성을 돌아보는 중에 반드시 들러보게 되는 사찰이 있으니 고란사이다. 낙화암에 있는 백화정에서 돌아 오른쪽으로 돌계단을 밟고 10여분 내려간다. 돌계단이 싫어 그냥 돌아가 버리는 이도 있다. 삶은 은총의 돌계단 어디쯤이라 하는데 말이다.

돌계단을 내려서면 1500년 백마강을 바라보고 있는 사찰이 눈에 들어온다. 고란사는 그 연혁이 분명하지 않다고 한다. 백제 때 왕들이 기도하던 내불전이라고도 하고, 백제 멸망 이후에 왕과 대신들의 놀이터였던 것을 삼천궁녀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서 지었다고도 한다. 부여군에서 발행한 안내서에는 고려시대에 삼천궁녀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지었다고 되어 있었다. 믿어지지 않는다. 아마도 백제시대 왕들의 내불전이라는 말이 맞을 것 같다. 땅에 묻힌 백제의 역사가 안쓰럽다.

고란사 당우는 단순하다. 극락보전이 있고 영종각이 있다. 뒤편으로 삼성각이 바위 위에 간신히 몸을 의지하고 붙어 있었다. 극락보전은 정면이 7칸 측면이 5칸으로 주변의 공간에 비해 비교적 큰 편이었다. 겹처마로 팔작지붕이다. 단청이 곱다. 벽에 그린 불화 심우도(尋牛圖)가 아름답다. 진리를 찾아 떠나는 동자의 모습이 갸륵하다. 영종각은 비교적 높이 있어서 종소리가 강을 어루만지며 이 땅에 스며있는 모든 백제의 영혼을 울릴 만하다. 삼천궁녀의 죽음이 사실이라면 백마강에 잠긴 한스런 영혼들이 위로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고란사는 조용하다. 본전인 극락보전은 열려 있으나 스님은 자리를 비웠다. 마당가에 기념품 가게 아주머니는 절을 찾아온 관광객을 상대로 흐트러진 이야기로 흥겹다. 마당을 가로질러 오른쪽 계단으로 바로 극락보전으로 향했다. 백제의 산성은 대개 사찰을 품고 있고 아미타여래를 모신 극락보전이 본전이다. 백제 유민들의 한을 말하는 것이다. 본존 부처님인 아미타여래(목조아미타여래좌상,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418호)는 미소가 없다. 아미타부처님 오른쪽에 대세지보살은 오른손을 가슴까지 올리고 왼손은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아미타부처님 왼쪽에는 흰색의 관음보살이 앉았다. 양식은 약간 다르다. 두 손 모두 무릎 위에 올려놓았고 왼손에 병을 들었다. 중생을 위한 약을 담은 병인가? 후면으로 수많은 나한상이 있다. 아마도 극락왕생을 위하는 신도들의 기원이 담기었을 것이다.

영종각을 돌아 고란정으로 갔다. 바위 석벽 저 아래에 아득하게 물이 괴어 있었다. 물은 마시기만 하고 담아가지는 말라고 적혀 있다.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시원하다. 그러나 속까지 시원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그냥 가슴이 서늘하다. 부처님의 은혜는 이렇게 서늘한 것인가?

삼성각에는 가지 않았다. 극락보전 벽에 그린 심우도를 보다가 아쉬움을 남긴 채 마당으로 내려왔다. 스님이 계셔서 다만 한 5분이라도 사찰과 부소산성의 연유를 듣고 싶었다. 스님은 자리를 지키며 신도나 탐방객에게 말씀을 주어야 한다. 스님은 부처님의 은혜를 대신 전하는 고란정 물맛 같은 법문을 들려주어야 한다.

기념품 가게 여인은 아직도 절 마당을 서성이고 있다. 스님 대신 그녀에게 합장했다. 그녀도 손을 모은다. 가슴은 텅 비었는데 몸은 무거워 돌계단을 힘겹게 올라 부소산문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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