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영철 아동문학가

“여보, 미국형님 참 대단하세요. 어제 시장에 갔는데 걸음이 얼마나 빠르신지 내가 따라가기가 바쁘더라고요. 식사도 얼마나 잘 드시는데요. 어디 그뿐인가요. 메고 오신 배낭을 한 번 들어 보세요. 난 무거워서 그 배낭 멜 수도 없어요. 누가 형님을 80세 노인이라고 믿겠어요.” 미국서 오신 형수님이 주무시러 방으로 들어가시자 아내의 수다가 시작된다.

큰형님이 돌아가신 후 한동안 우울증에 시달리신다는 이야기를 조카로부터 들었다. 비록 자식들이 가까이 산다고는 하지만 타국에서 각자 먹고 살기 바쁘니 누가 부부처럼 서로 챙길 수 있겠는가! 하루는 큰조카가 전화가 왔다.

“작은아버지, 어머니의 우울증이 너무 심해서 잠시 한국을 다녀오시게 했으면 하는데, 작은아버지 의견은 어떠신지요. 의사선생님께서도 여행을 추천 하시고 해서…”, “그래, 그럼 오시게 해야지. 형님 돌아가시고 얼마나 가슴이 허전하시면 그렇겠냐. 고향에서 잠시 계시다 보면 안정을 되찾으시겠지.”

의사선생님 처방이 옳았다. 형수님은 한국에서 한 달 정도 다녀가신 후 병세가 호전되어 전처럼 활발하게 생활하신다는 소식을 조카가 전해 왔다. 그런 일이 있은 후 형수님은 우울증 핑계 대시며 일 년에 한 번은 꼭 한국을 방문하신다. 아마 조카들도 어머니께 효도를 한다는 의미로 비행기 표를 준비하여 보내드리는 것 같다. 그러나 한국에 있는 친척들은 매년 계속되는 형수님 방문을 꼭 반기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형수님이 가시고 나면 나에게 여러 가지 불편을 호소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이해가는 부문도 많지만 그렀다고 형수님을 못 오시게 할 수도 없으니 그게 늘 내 가슴을 아프게 한다. 불평을 하는 이유를 들어보면 우선 옛날처럼 여자들이 한가하게 집에 있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좀 젊은 사람들은 직장생활을 하고, 나이가 있는 분은 손자손녀를 보거나 아니면 각자의 일정이 있어 형수님과 며칠을 함께 보내는 것은 부담스럽다고 한다.

형수님 입장에서는 한국에 오셨으니 이곳저곳 돌아다니고 싶고, 먹고 싶은 것도 많으실 줄 알지만 이제는 한가하게 형수님과 함께 놀아 줄 사람이 없다. 둘째 형수님이 살아계셨을 때는 두 분이 잘 다니셨는데 둘째 형수께서 돌아가시니 그 역할을 할 사람이 없다.

누님들이 계시지만 모두 병환 중에 계시니 마음뿐이다. 그래서 큰형수님이 오신다고 하면 나도 걱정부터 앞선다. 이 부문에서는 아내도 마찬가지다. “여보, 미국형님이 아무리 건강은 하다고 하지만 작년처럼 오셔서 아프시면 어떻게 해요. 의료보험이 안 되니 병원비도 그렇고 누가 모시고 병원을 다녀야 하는데, 하루 이틀도 아니고… 좀 방정맞은 생각이지만 큰 병이 걸려 오도가지도 못하면 누가 책임을 질지도 걱정이에요.”

며칠 전 신문을 보니 2015년에서 2020년에 태어나는 한국여성의 기대수명은 86세라고 한다. 생활환경이 좋고, 의료시설의 발달로 인해 수명은 계속 늘어나지만 이것이 꼭 축복받을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내 주위를 둘러보아도 오래 사는 것이 이제는 기쁨이요, 꿈이 아니라 걱정거리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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