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충북작가회의 회장

참으로 한참 만에 자전거를 타고 남들로 나갔다. 시가지를 조금 벗어났을 뿐인데도 풍광이 확연하게 달라졌다. 일상에  쫓겨 계절이 어떻게 가고 있는지도 모른 채 일주일이 가고 한 달이 지나간다. 남들에는 이미 가을이 깊어져가고 있었다. 올 초 언제던가 모내기가 한창이던 그때 ‘올 가을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남들 가득한 누런 들판을 온 마음으로 느껴봐야지’하고 작정했었다. 그런데 어느새 남들의 대부분이 비어 있었다. 바라만 봐도 가슴 가득 풍성함이 느껴지는 남들 벌판을 올해도 놓치고 말았다.

멀리 남들 한 쪽에서 콤바인이 때 늦은 추수를 하고 있었다. 신기했다. 그런데 신기하기는 했지만 뭔가 허전했다. 누런 논을 거침없이 오가며 벼를 베 제키는 콤바인을 보며 예전 고향에서의 타작 광경이 떠올랐다.

예전에는 타작이 동네 잔치였다. 추수 때가되면 며칠 전부터 어른들은 이웃마을까지 돌아치며 일꾼을 구하러 다녔다. 벼를 베는 날이면 식전부터 집안팎이 분주해졌다. 일꾼들이 논으로 나가면 집안사람들도 세참에 식사준비에 덩달아 동동거렸다. 논에는 열댓 명의 일꾼들이 한 줄로 늘어선 채 벼를 베어 등 뒤로 내놓았다.

그러면 뒤에서는 볏단을 묶어세웠다. 왁자하게 떠들어대며 벼를 베는 일꾼들을 보며, ‘저 너른 논을 언제 다 베려고 저러나’ 조바심이 나기도 했지만 세참 때마다 주전자 심부름을 가보면 어느새 야곰야곰 논이 비어져가고 있었다.

정말 수지맞고 좋은 날은 타작하는 날이었다. 지게와 누렁이 등짐으로 옮겨진 볏단이 허풍을 더해 산처럼 쌓였다. 그리고 앞마당에는 와롱부터 돌기 시작했다. 마당에 멍석이 펴지고 집안 상은 물론 빌려온 이웃집 상까지 펼쳐졌다. 함지박 수북하게 쌓아올린 하얀 쌀밥을 장정들이 들고 마당으로 나오고, 상위에는 명절날보다도 더 풍성하고 맛깔스런 음식이 푸짐하게 차려졌다. 지나가던 동네 사람들까지 불러들여 벅석거리며 타작 밥을 함께 먹었다. 타작하는 날은 동네 잔칫날이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며 어스름이 밀려오면 백 촉짜리 백열등이 마당을 대낮처럼 밝혔다. 그렇게 타작은 밤늦도록 그칠 줄 몰랐고, 밤새 윙윙거리는 와롱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곤 했었다.

그런 것에 비하면 남들에서 하는 타작은 타작도 아니었다. 이발을 하듯 콤바인이 쏜살같이 지나가며 순식간에 벼를 삼키고 있었다. 그리고는 볏짚을 꽁무니로 날려버렸다. 털어진 알곡도 콤바인에서 트럭으로 곧바로 토해내듯 쏟아 부었다. 트럭이 알곡을 싣고 어디론가 떠나자 타작 끝이었다. 장정 수십 명이 며칠 하던 일을 단 한 대의 콤바인이 대수롭지 않게 해치워버렸다. 논둑에 둘러앉아 세참을 먹던 이야기는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이고, 모내기 봉사활동을 온 사람들을 대접하기 위해 짜장면 삼십 그릇을 시켰던 ‘우리 동네’ 이야기도 이젠 고전 속의 한 페이지가 되고 말았다. 참으로 편리한 세상이다. 그저 편리함만과 추구하다보니 뭔가 자꾸 이야기가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쉽다.

며칠 전 도청 정문 앞에서 벼 이삭을 들고 볏가마를 쌓아놓고 시위를 하는 농민들을 보았다. 그토록 귀하던 쌀이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렸다. 이렇게 쌀이 천대를 받게 된 것은 것은 혹여 너무 쉽게 거둬들이는 콤바인 때문은 아닐까. 공연한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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