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주 충북수필문학회장

궁녀사, 사자루를 지나 백화정에 이르렀다. 백마강은 흐르는지 머무는지 고요하기만 하다. 강물도 한 맺힌 부소산성을 안고 바로 흘러가지 못하는 것인가. 유람선은 관광객조차 끊어져 선착장에 한가하다. 강 건너 들녘에 가을을 맞은 농작물은 옛날을 기억이나 할까. 평화롭기만 하다.

백화정에는 오르지 않았다. 백화정 아래 돌에 새긴 낙화암 전설이 마음 아프다. 삼천궁녀의 안타까운 전설은 어디서부터 전해졌는지 모르지만 믿고 싶지 않다. 당시 백제, 신라, 고구려, 일본, 당의 관계가 오늘날 극동의 갈등만큼 미묘하고 복잡했는데, 태자 때부터 해동증자라고 불린 의자왕이 술에 취해 삼천궁녀와 흥청거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진실로 있었던 사실이라고 증명할 사람은 없다. 삼천궁녀의 충절과 절개를 돋보이려 했다면 과장이고, 의자왕의 실정을 드러내려 했다면 왜곡이다. 의자왕이 받은 1500년 수모가 안타깝고, 백제 옛 왕성에 돌을 새겨 놓은 저의가 안타깝다.

의자왕이 패륜정치를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신라와 당나라가 가까워지는 사이 외교경쟁에서 실패했다고 생각하면 맞을 것 같다. 멸망한 나라의 역사가 긍정적이고 온전하게 기록되기를 바라지는 않지만 지나치게 왜곡되고 폄하돼 기록되는 것이 안타깝다. 낙화암에서 백마강을 바라보며 혹 몇몇 궁녀나 왕녀들, 귀족의 부인이 몸을 날려 삶의 최후를 맞이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서늘해졌다.

낙화암 삼천궁녀의 전설이 거짓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고란사 극락보전에 삼배를 올리며 꽃처럼 몸을 날린 여인들의 명복을 빌었다. 법당을 돌아 고란정으로 가면서 백제의 중흥을 꿈꾸다가 어이없는 최후를 맞은 성왕에 대한 안타까움과 함께 찬란했던 문화가 한꺼번에 기울기 시작한 백제에 대한 향수로 우울함을 견딜 수 없었다.

성의 외벽은 상당히 높고 가파른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곳에서 백마강을 건너오는 적을 방어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와 같이 부소산성은 중요한 요새였다. 성안에 군창지와 건물지들이 많은 것으로 보아 유사시에는 군사적인 목적으로 쓰였고, 평상시에는 왕과 귀족들이 아름다운 경관을 즐기는 비밀스런 정원으로 사용됐을 것이다.

이런 요새를 만들기 위해서 오늘날처럼 중장비가 있는 것도 아닌데 얼마나 많은 인력이 동원되었을 것인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고는 하지만 동원된 백성의 고충을 생각해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물론 축성의 기술이라든지 발굴되는 여러가지 유물 같은 것을 보면 높이 평가될 만한 일이다. 성을 보고 당시 사회, 정치, 경제 등 모든 면을 짐작해 묻혀 있는 백제 역사를 다시 찾아 낼 수 있는 것은 모두가 이러한 문화유산의 덕이기는 하다.

부소산성에서 나와 사비의 중심가에 성왕의 동상을 찾아가 보았다. 지금까지 저렇게 늠름하게 앉아 있다면 어떨까? 부질없는 생각이다. 백제대향로 조형물 앞에서 우회전해 나성 복원 공사 현장에 갔다. 낙화암 전설과 백제 역사에서 안타까운 평가를 받는 의자왕을 생각하니 돌아서는 마음이 가볍지 않다. 백제여! 성왕의 꿈이여! 의자왕의 안타까움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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