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충북작가회의 회장

“얘, 니가 나보다 낫다. 산책도 하고!”

무심천으로 산책을 나가다가 어떤 직장인이 아람이에게 하는 말이었다.

개만도 못하다며 스스로를 자책하는 그는 어떤 사람일까. 아직 날도 새지 않은 어슴푸레한 새벽, 도로가에서 통근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 주변에는 또 다른 서너 무리의 근로자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자신들은 잠도 설치고 새벽부터 일어나 분주하게 쫓기듯 출근을 하는데 개나 데리고 여유를 부리는 내가 그들에게는 어떻게 비춰졌을까. 그래서 대꾸도 없이 그 앞을 빠르게 지나쳤다. 그런데 산책을 하면서도 내내 그의 말이 뇌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아람이를 데리고 산책을 하다보면 사람들로부터 자주 듣는 소리다. 출근하는 직장인들이, 인력시장에 모여 있는 일용직들이, 가방을 메고 어디론가 바삐 가는 아주머니들이, 재래시장 상인들이, 연세 많은 노인 분들이 푸념을 섞어 하는 말이다. 대부분 사는 것이 팍팍한 사람들이다. 얼마나 사는 게 각박하면 개를 부러워할까.

참으로 암울한 시절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살아가는 일이 녹록치 않다. 새벽부터 동동거려도 생활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더더욱 심각한 문제는 열심히 일을 해도 희망이 없다는 사람들의 체념이다. 그저 하루하루를 때우며 생존할 뿐이다. 그러니 아무론 생각도 없이 그저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개를 부러워하는 세태가 된 것이다. 사람에게 희망이 없으면 살아도 산목숨이 아니다.

요즘 많은 젊은이들이 결혼을 미루거나 포기하고 있다. 독신주의자가 아니라 경제적으로 형편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취업도 어렵지만, 설사 취업을 했더라도 스스로 결혼비용을 마련해 결혼하려면 혼기 안에는 불가능하다. 부모가 능력이 되어 집칸이라도 마련해줄 수 있다면 훨씬 힘이 되겠지만, 그런 집안이 얼마나 될까. 그래서 나날이 미혼자는 늘어나고 인구는 급감하고 있다.

도대체 왜 이런 세상이 됐을까. 이러한 문제는 어디에서부터 생겨난 것일까. 그것은 한마디로 인간을 착취하는 자본주의 병폐 때문이다. 온갖 명목으로 사람들을 줄이고 나머지 사람들이 그 일을 감당해야한다. 그러니 여유를 누릴 틈이 없다. 그런 직장조차 언제 목이 달아날지 알 수 없다. 그러니 직장을 잃을까 두려워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한 마디 항변조차 하지 못한다. 그러니 숨통이 막힐 지경이다. 조선시대 양반과 종의 관계가 이보다 더할까.

사람을 중하게 여기지 않는 세상은 건강한 세상이 아니다. 세상 모든 일이 사람을 중심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사람이 세상의 중심이다. 사람은 그 자체만으로도 존중받아야한다. 그런데 작금의 자본주의 경제체제 아래서 인간은 하나의 부속품으로 전락되고 말았다. 그래서 생산성이 떨어지는 사람은 곧바로 도태되고 만다. 사람이 물건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물건이 사람을 지배하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주객이 전도됐다. 그러다보니 사람이 개를 부러워하는 세상이 됐다. 더 이상 사람들이 개를 부러워하는 그런 일이 없는 세상이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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