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충주농고 교장 수필가

나는 갑자기 벙어리 삼룡이 생각이 났다.

삼룡이는 1925년 나도향이 쓴 단편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책속에 내용을 보면 듣고, 보고, 말하지도 못하는 불쌍한 그가 농촌 농가 집에 충직한 종살이를 했다. 집주인 아가씨의 따뜻한 인간미에 감복(感服)이 되어 온갖 멸시와 고생을 마다하지 않았다. 주인을 위해서라면 온 정성을 다했다. 어느 날 주인집에 화재가 나서 불에 타 죽을 위급 지경이 되자 주인집 가족을 모두 구하고 자기는 그 불속에 자신을 던져 버리는 살신성인의 정신이 내포된 소설 속에 나오는 이야기 이다.

왜 나는 이 벙어리 삼룡이 생각을 했을까. 요즘 세상에 전해지는 소식이 너무나 비정(非情)하기 때문이다. 지금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벙어리 삼룡이 와 같은 천사의 마음을 지닌 19세기 소설 속에 인물을 그리워하는가. 잠꼬대 같은 소리 한다고 비판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물질 만능이 원인이 되었든, 무한경쟁에 의한 이기주의 에서 비롯 됐든, 날마다 터져 나오는 한심한 작태를 일일이 들추기조차 부끄러웠다. 순수한 인간 사랑이 아쉬움을 더해 가고 있기에 소설 속에 인물을 동경 한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소설 같은 장한 일을 한 현실 이야기도 많이 있었다. 1987년 12월 1일 일간지에 보도된 내용을 옛 일기장 속에서 발견하고 벙어리 삼룡이 이야기가 잠꼬대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서울 신당동에 사는 쉰여덟 살의 김 갑순 씨는 집에 불이 나자 위험을 무릅쓰고 불길 속에 뛰어들어 중풍으로 앓아누워 옴짝 달싹 못하는 90객의 시어머니를 구사일생으로 구해낸 장한 이야기가 실제로 있었다. 얼마나 장한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인간 사랑인가. 지금 세상은 하늘같은 부모를 학대하고 박대하는 자식이 수 없이 많다. 짐짝 버리듯이 내다버리고 그래도 모자라 시해(弑害)까지 능사 로 하는 이 막 되먹은 세상에 중풍에 걸려 요지부동한 시어머니를 죽을 각오로 구해낸 것은 참으로 가상하고 기특하여 귀감(龜鑑)으로 삼아야할 장한 일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것이 어찌 삼룡 이처럼 소설에만 나오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는가.

장한 일은 이것만이 아니다. 얼마 전 화재현장에서 불길 속에 시민의 생명을 구하고 자기는 불길 속에 희생된 소방관의 영결식에 조사를 읽는 여자소방관의 목멘 소리를 듣고 가슴이 뭉클했다, 또 지하철에 떨어져 죽음이 경각에 이른 한 시민을 순찰하던 한 경찰관이 용감하게 뛰어 내려가 살려낸 장한 일도 있었다. 소방관이라고 경찰관이라고 왜 생명이 위험함을 모르겠는가. 그도 사랑하는 처자가 있는 가장으로써 자기 직분만을 다하는 사명감이 한 시민의 생명을 구해 냈다. 그 소방관과 경찰관의 사명감에 뜨거운 격려를 보냈다.

병든 시어머니를 불길 속에서 구해낸 며느리의 효성(孝誠), 불길속에 시민의 생명을 구하고 희생된 소방관, 지하철에서 위급한 인명을 구한 경찰관의 사명감(使命感), 이 모두가 인간 사랑을 바탕에 둔 것이 아닌가. 오늘따라 소설 속에 나오는 벙어리 삼룡이가 지금 각박한 현실에 더욱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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