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철 수필가

청춘은 꿈나무 새싹에게 내어주고 이제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친구들과 산행에 나섰다. 교장이 두 명이고 한 친구는 내년에 교장으로 승진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나는 아직도 평교사를 면하지 못하고 있으니 어지간히 주변머리가 없는 사람이다.

우리끼리 있을 때는 옛날처럼 이름을 부르는 게 더 친숙하고 좋을 것 같은데 이들은 꼭, 교장, 교감으로 부른다. 그러는데 어찌 내가 그들의 이름을 부를 수 있겠는가. 교감 승진하기는 글렀고 기회 봐서 명퇴신청을 할 계획이다.

오늘 산행은 공주에 있는 갑사에서 삼불봉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원점회귀 산행을 계획했었다. 그런데 남 교장이 요즘 버섯이 많이 나는 계절이니 야산에 다니면서 버섯이나 따다가 끓여서 술 한잔 하는 게 더 좋지 않겠느냐고 하는 말에 모두 그러자고 했다.

차를 운전하고 가던 남 교장이 어느 산모롱이를 돌다가 차를 세우고 이 산을 올라가 보자고 한다. 인가도 없고 도로 옆으론 누런 배를 드러낸 호박이 탐스럽게 익어가고 있어서 한 폭의 그림 같은 곳이었다.

“어! 이게 뭐야?”한 20여 분 올라갔을까. 앞 서 걷던 남 교장이 걸음을 멈추고 호들갑을 떤다. 무슨 일인가 싶어 걸음을 빨리하여 가보니 산토끼 한 마리가 올무에 걸려 죽어있었다. 죽은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아직 따뜻한 체온이 그대로 느껴졌다.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잿빛 토끼여서 가엾은 마음이 더했다.

“이런, 어느 못된 사람이 올무를 놓았군그래.”

우리가 머뭇거리는 사이 가느다란 철사에 목이 걸려 죽은 토끼를 남 교장이 비닐봉지에 둘둘 말아서 배낭에 집어넣는다.

“용왕님도 먹어보지 못한 토끼 간을 먹어보게 생겼네. 이거 한 마리면 소주 각 1병은 문제없겠어. 하하하”

그 웃음소리가 사뭇 호탕하다.

“오늘은 일찍 내려가 이거나 볶아서 술이나 한잔 하자고.”

언제나 리더는 남 교장이었다. 시계를 보니 11시가 가까워오고 있었다. 산길을 좀 더 걷고 싶은 아쉬움이 있었지만,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이 차, 사장님들 차인가요? 좋은 차 타고 다니십니다.”

우리 차 옆에서 서성이고 있던 젊은이 둘이 다가왔다. 진한 경상도 사투리가 몹시 귀에 거슬렸고, 그의 언어에는 비웃음이 가득 묻어 있었다.

“그렇소만 무슨 일입니까?”

당연히 차주인 남 교장이 나섰다.

“요즘 농작물 절도 사건이 심하고, 밀렵행위도 자주 일어나서 감시하는 중입니다.”

그들의 손에는 굵은 철사로 만든 돼지 올무가 들려있었다.

“수고 많군요. 하지만, 우리는 산에 갔다 내려오는 길이니 농작물 절도나 밀렵하고는 관련이 없어요.”

“죄송하지만, 배낭 좀 열어봐도 될까요?”

잘못되어가고 있었다. 뭔가 단단히 옥죄어오는 듯한 압박감이 엄습해왔다.

“이것 봐요. 젊은이! 우리가 농작물이나 훔치고 야생동물이나 잡는 사람으로 보인단 말입니까? 우리는 이래 봬도 교육자예요. 교육자!”

남 교장이 어이없다는 듯 젊은이를 힐책하고 나섰다.

“아하, 교장 선생님? 그러면, ‘야생동물 무단 포획 시 자연공원법에 의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삼천 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게 된다.’라는 사실도 잘 아시겠네요. 배낭 좀 열어볼까요.”

사내 하나가 남 교장의 빨간 배낭을 유심히 살피더니 확신에 찬 눈웃음을 지으며 다가가 확 잡아채 열어젖힌다. 얼굴도 험악하게 생긴 게 조폭 같아 보였다. 비닐봉지에 싸인 토끼를 꺼내 든 사내의 얼굴에 음흉한 미소가 감돈다. 한 사내는 그 모습을 폰으로 찍고, 우리가 잡은 게 아니고 올무에 걸려있는 것을 가져온 것뿐이라고 말해도 막무가내였다. 정말 난감했다. 젊은이는 밀렵꾼들을 붙잡았으니 경찰서에 신고하겠다며 으름장을 놓는다. 더구나 우리의 신분이 교육자로 밝혀지자 더 기고만장했다.

이때 우리와 같은 방향에서 내려와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젊은이가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표 교장의 옆구리를 찌르며 눈을 찡긋한다. 표 교장이 눈치를 채고 그를 따라가기에 무슨 일인가 싶어 나도 슬슬 따라갔다.

“교장 선생님들 같은데 경찰서에 신고하면 점잖은 체면에 무척 곤란해지겠네요. 저 사람들 좀 있으면 신문기자 부를 거예요. 지난번에도 어떤 사람이 걸려서 벌금 500만원을 물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소?”

“벌금 내고, 신문에 사진 실리고 직장에 알려져 창피당하는 것보다는…. 제가 나서 볼게요. 알고 보니 은사님이었다고 말하면 통할지도 몰라요.”

표 교장이 인정 있어 보이는 젊은이에게 어떻게든 해결해달라고, 바짝 매달린다. 우리가 직접 하진 않았지만, 이런 일이 알려지면 곤란한 일이 벌어질 건 분명하다. 특히 내년에 교장으로 승진할 친구가 더 안절부절 이었다. 결국, 네 사람이 백만 원을 해서 주고 이 자리를 벗어나잔다. 나는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그런 방법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중재역할을 하던 젊은이가 돌아와, 그 돈 가지고는 어림 반 푼어치도 없다며 다시 생각해보란다. 결국, 1인당 100만원씩 내기로 하는 것 같았다. 산에 온 사람들이 현금을 가지고 다닐 리 만무하니 은행이 있는 곳까지 가서 카드로 찾아 주겠다며 사정사정하는 꼴은 차마 눈뜨고 못 볼 지경이었다. 세 친구의 의견에 반대한 나는 자연 그들과 멀어질 수밖에, 나하고는 눈도 마주치려 하지 않는다.

현금 자동인출기가 있는 공주까지 나왔으니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게 몸도 마음도 편할 것 같았다. 다른 일을 보고 가겠다며 멀찍이 떨어져 돈 건네는 모습을 지켜보는 내 마음은 찢어질 것만 같았다. 현금을 받아든 사내들이 떠나자 우리 친구들도 차를 운전하고 쌩하고 달려가 버린다.

청주행 버스는 1시간 가까이 기다려야 있다. 나는 인근의 순댓국집 문을 열고 들어가 모자와 점퍼를 벗어 배낭에 걸쳐놓고 막걸리 한 병을 시켰다. 점심도 거른 채 한 병을 거의 마셔갈 즈음 내 등 뒤 의자에 와서 앉은 사람들의 대화 내용이 예사롭지 않았다.

“야! 그 미끼 이제 버려, 이미 내장은 다 썩었을 거야.”

“그래, 몇 번 우려먹었으니 아까울 것도 없어. 오늘은 수입이 제법 짭짤하네. 일당백이야. 하하하.”

조금 전 우리 가방을 뒤지던 경상도 사투리의 사내들과 중재역할을 하던 젊은이 목소리였다. 나는 얼른 핸드폰을 열어 녹음 버튼을 눌렀다.

“그 작자들 토끼 간은 고사하고 고기 맛도 못 봤으니 얼마나 배가 아플까?”

“그래, 맨날 그런 얼간이들이나 걸렸으면 좋겠다.”

그들의 대화는 모두 내 핸드폰에 녹음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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