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고등학생들을 지도하는 필자는 가끔씩 학생들이 안쓰러울 때가 있다. 요즈음 고등학생들은 참 바쁘다. 내신관리도 해야 하고 수능 준비도 해야 한다. 대학 입시에 필요로 하는 스펙을 쌓아야 하기에 틈을 내어 봉사활동도 하고 동아리 활동도 열심히 해야 한다. 논술 준비도 해야 하고 자기소개서도 써야 한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그렇게 바쁜 고등학교의 생활이지만 그래도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학교생활을 하도록 여러가지로 프로그램을 구안해 학생들이 인성교육에도 소홀하지 않도록 노력한다. 그 중의 하나가 축제다.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에서도 교내 축제와 과학축전이 올해도 개최됐다. 방학 중 방과 후 수업을 하는 등으로 학업에 전념하면서도 틈틈이 학생 자신의 재능과 끼를 닦아 축제 준비에 노력하더니 그 결실을 학우들 앞에서 펼치게 됐다. 미술 작품이나 시화 작품과 같은 작품을 교내에 전시하는가 하면 학급별 테마체험 활동도 운영됐고 과학체험 학습장도 열었다. 자신이 주관하는 행사에 참여하는 학생들의 모습에는 입시를 준비하는데 오는 피로감은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 듯 했다. 그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즐겁게 축제에 참여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고맙고 대견했다.

축제의 한 부분으로 시화전 지도를 맡았던 필자도 학생들이 입시에서 잠시라도 해방돼 자신의 꿈과 희망을 펼쳤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러던 중 축제를 담당하시는 선생님께서 한 가지 제안을 하셨다. 일부 학년이나 학생에게만 국한된 시화전이 아니라 되도록 많은 학생이 참여하는 시화전을 여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이었다. 필자는 축제 담당 선생님의 제안에 공감했다. 그래서 기말고사가 끝나고 잠시 한가한 틈을 내어 필자가 지도하는 3학년 학생들에게 원하는 학생은 시를 써보도록 권유했다. 마침 기말고사가 막 끝난 뒤라 그런지 많은 학생들이 부담 없이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번 퇴고를 거쳤다. 그 중 일부 희망하는 학생들과 이미지 작업을 하고 출력을 해 인쇄물에 코팅 작업을 했다. 구멍을 뚫고 끈으로 묶을 수 있도록 준비를 했다. 작업을 하면서 필자는 처음 시화전에 시를 걸었던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는 듯한 설렘을 느꼈다. 그런데 시를 낸 학생 중에는 평소 학생 본인이 써왔던 시 작품을 20편 가까이 제출한 학생도 있었다.

마침내 축제일이 다가왔다. 필자는 맨 처음 그 학생의 작품을 함께 교내 둥근 소나무 가지에 걸었다. 물론 가지가 다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소나무 하나가 詩 나무로 바뀌었다. 그렇게 소나무 여러 그루가 시 나무로 바뀌었다. 소나무에 시가 열린 것이었다. 그리고 교문에서 강당으로 들어오는 등굣길에는 나무와 나무 사이에 줄을 매어 학생들의 작품을 죽 늘어 걸어 놓았다. 축제일 등굣길의 학생들이 줄에 걸린 시를 음미하며 걸었다. 그렇게 시화전에 참가한 학생들의 작품은 3학년을 포함해 120편 가까이 됐다. 예년에 비해 훨씬 많은 작품이었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다. 누구나 자신의 꿈과 희망과 낭만을 글로 엮어 남 앞에 펼쳐 놓을 수 있다. 시화전 내내 생각했던 말이다. 시화전 뿐 아니라 미술이나 공연이나 체육활동 등으로 자신의 기량을 유감없이 발휘면서 짧은 축제일을 즐겼던 학생들은 요즈음 다시 축제일에 품었던 그 활활 타오르던 열정으로 다시 학업에 몰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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