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교수

어떤 사나이가 외딴 시골에서 메마른 땅에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있었다. 그러나 돌이 많고 잡초만 우거진 땅이었으므로 근처의 농민들은 “멍청한 사람이다. 저런 곳에서 곡식이 자랄 턱이 없다!”하고 빈정됐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자 개간지에는 많은 곡식이 자랐고 드디어 그 일대에서 가장 많은 수확을 거두었다.

마을 사람들은 놀라면서 그 사나이에게 물었다.

“당신은 도대체 무슨 비료를 썼습니까?”

그 사나이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특별한 비료 같은 것 준 일 없습니다. 다른 사람과 다른 점이 있다면 ‘될대로 되라’는 비료를 주었을 뿐입니다.”

이것은 중국의 우화(寓話)다.

결단력이 없는 중요한 이유는 ‘실패의 공포감’이다. 실패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자기는 몰락해 버리지 않을까. 모든 사람들에게 자기의 무능을 조롱받지 않을 것인가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주저만 하고 있어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장기(將棋)에 약한 사람은 자기의 군사가 잔뜩 있는데도 싸우려 들지 않는다. 이래 가지고서는 힘을 낼 수가 없다. 좌우간 부딪쳐 싸워 나가야 장기가 느는 법이다.

인생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실패를 두려워하고 지는 것이 두려워 싸움을 피하기만 해서는 아무것도 못하고 만다. 성공자란 실패를 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수많은 실패를 거듭하면서 그 실패를 거울삼고 밑거름으로 해서 한 걸음 한 걸음씩 앞을 향해 나아간 사람인 것이다.

그래서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 하지 않는가.

어떤 회사에서 어떤 사원의 승진전형(昇進銓衡)에 관한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옛날 실패를 이유로 이 승진 안이 부결될 확률이 컸다.

그때 누군가가 “실패한 적이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을 버린다면 능력 있는 사원은 배출되지 않는다. 실패한 자는 그 실패를 뉘우치고 있으므로 도리어 일을 잘해낼 수가 있다. 그 사람을 승진시키는 것이 좋다. 내가 보증하마.”하고 나섰다.

여러 사람이 “어떻게 보증하지?”하고 의아해 하자 “한번 실패했기 때문에 두 번 다시 그러한 실패는 되풀이 하지 않는다. 한 번도 실패가 없었다는 것은 한 번도 대담한 도전을 해본 적이 없다는 말이 아닌가!”하고 주장해 승진이 결정되었다고 한다.

위대한 성공을 거둔 사람은 쓰라린 실패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 실패의 경험이야 말로 결단력을 길러주고 일에 대한 정열을 불태우게 하는 것이다.

철도왕 제임스 힐은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해보지도 않고 실패만을 두려워하는 자는 멍텅구리든가, 아니면 비겁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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