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기원전 290년 춘추시대, 제(齊)나라 환공(桓公)은 그 무렵 최고의 강자였다. 하루는 재상인 관중(管仲)과 위나라 정벌을 모의하고 후궁으로 들어서는 길이었다. 그런데 궁녀 중 하나가 환공 앞으로 다가오더니 계단 아래에서 크게 절을 올리는 것이었다. 환공이 무슨 까닭이냐 물으니 그녀가 대답했다.

“소첩은 위나라 출신입니다. 지금 왕께서 궁에 들어오시는 걸 뵈오니 발걸음이 힘차고 기세가 아주 높아 보였습니다. 마치 어느 나라를 정벌할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데 왕께서 저를 보고 안색이 변하시니 이는 곧 저의 나라가 아니겠습니까?”

환공이 이 말을 듣고 매우 놀랐다. 다음 날 아침, 관중이 환공의 기색을 보더니 아뢰었다.

“왕께서는 위나라 정벌을 취소하셨습니까?”

그러자 환공이 다시 놀라며 물었다.

“재상은 그걸 어찌 아셨소?”

이에 환공이 대답했다.

“왕께서 말씨가 느릿하고 저를 대하는 안색이 어둡기에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 말에 환공이 더욱 놀랐다. 얼마 후 환공은 궁궐 누대에서 이번에는 거(?)나라 정벌을 비밀스럽게 논했다. 그런데 이 계획은 미처 선포하기도 전에 나라 안에 널리 알려졌다. 환공이 화가 나기도 하고 기이하기도 하여 관중에게 소문을 퍼뜨린 자를 잡아오라 명했다. 그날 누대 근처 근무자들 중 곽동수라는 자가 유심히 살펴봤다는 보고를 듣고 관중이 그를 불러들여 물었다.

“거나라 정벌을 선포하지도 않았는데 그대가 어찌 알고 그런 말을 발설했는가?”

이에 곽동수가 아뢰었다. “소인은 그저 왕의 의중을 사사로이 추측한 것뿐입니다.”

관중이 다시 물었다.

“무슨 근거로 그런 추측을 하게 되었는가?”

곽동수가 아뢰었다.

“나라를 다스리는 군주는 세 가지 모습이 있다고 했습니다. 느긋하고 기쁜 모습은 경사스런 일이 있기 때문이고, 무겁고 가라앉은 모습은 재난이 있기 때문이고, 격앙되고 맹렬한 모습은 전쟁을 도모하기 때문입니다. 그날 제가 누대에 계신 왕과 재상을 바라보았을 때 흥분되고 격앙된 모습이었습니다. 이는 전쟁을 획책하는 의중이라 짐작했습니다. 또 재상께서는 손으로 가리킨 방향이 아직 제나라에 복종하지 않은 나라 중 거나라 뿐이라 그리 짐작했던 것입니다.”

이 말에 환공이 계단 아래로 내려가 그를 존중하며 함께 국사를 논할 것을 명했다. 이는 명재상 관중에 대한 기록인 ‘관자(管子)’에 있는 이야기이다.

명견만리(明見萬里)란 멀리 떨어진 일이라도 관찰력, 판단력, 통찰력으로 상황을 살피면 훤히 안다는 뜻이다. 소리가 없어도 들을 수 있고 형태가 없어도 알 수 있는 것 중 경험이 가장 우선이다. 지혜가 그 다음이고 지식은 그 끝이다. 이는 젊어서 정신 바짝 차려야 체득하는 세상의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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