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만동 / 청주성광교회 목사

아이젠하워가 대학 총장으로 재직하던 때에 무더기로 징계가 올라왔다. 학생들이 들어가지 말아야할 잔디밭을 들어갔다는 것이다.

아이젠하워가 그곳을 한 번 가보자고 했다. 학교 정문에서 강의실로 가려면 잔디밭을 돌아가야 한다.

 그래서 학생들은 빠른 길을 선택하느라 잔디밭을 질러갔던 것이다.

학교 직원들은 징계를 주장했지만 아이젠하워의 결정은 잔디밭에 길을 내라고 한다.

학생들이 쉽게 강의실로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학교는 잔디밭을 위해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는 아이젠하워의 생각이었다. 아이젠하워의 리더십이다.

다윗이 이스라엘 왕이던 시절에 블레셋과의 전투가 있었다. 다윗이 자랐던 자신의 고향 베들레헴을 블레셋이 점령하고 있었다. 다윗의 마음이 아팠다.

 “누군가가 나로 하여금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마시게 할꼬.” 다윗의 마음을 읽었던 부하 세명이 목숨을 걸고 블레셋진을 뚫고 들어가 우물물을 길어 온다. 그러나 다윗은 마시지를 않는다.

 그것은 물이 아니라 그들의 피라고 보았던 것이다. 그 물을 하나님께 부어드린다. 감격한 부하들의 사기가 블레셋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게 된다. 다윗의 리더십이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셨다.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만큼 그는 정치적이지를 못했다. 그의 말씀엔 언제나 십자가가 배어 있었다. 모든 사람들은 왕으로 부상을 원했지만 그는 결코 왕이 되기를 원치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에게 종이 되라고 말한다.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도 언제나 낮은 자리에 앉기를 권한다. 높아지기를 원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면서도 종이 되어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는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그분을 구세주라고 부른다. 예수의 리더십이다.

높아지기를 좋아하고, 명령하고, 가르치려 하고, 언제나 위에 서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시대다. 최고가 되려고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는가? 높은 자리를 또한 얼마나 갈망하는가?

그런 높은 곳에서 자신의 리더십을 발휘하려는 사람들에게 예수는 역설적인 리더십의 본을 보였다. 종의 리더십이다.

 낮은 자리에서 이름 없이 봉사하며 섬기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많은 시대가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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