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휘정 청주 흥덕구 봉명2송정동주민센터

지난달 28일부터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일명 김영란법)’이 전면 시행됐다. 법 시행에 앞서 각 자치단체 및 공공기관에서 김영란법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졌지만, 법의 적용범위가 광범위하고 법 기준에 있어서 모호한 부분이 많아 다들 혼란스러운 것 같다.

김영란법에 대한 설명 중 저촉 사례가 몇 개 제시되어 있어 한번 살펴보았다. 학부모가 교사와 상담할 때 약간의 다과를 선물하는 것도 과태료 대상이라고 한다. 직접적인 직무이해관계이므로 성의를 표시하는 선물이라도 대가성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사례를 접하고 나니 불현듯 예전에 내가 겪었던 일이 떠올랐다.

당시 나는 주민센터에서 전입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어느 날 한 민원인이 오셔서 전입신고와 관련해 상담을 원하시기에 열심히 방법을 찾아 설명을 드리고 민원처리가 원활하게 될 수 있도록 도와 드렸다. 그랬더니 그분은 너무나 고맙다며 인사를 한 뒤 가셨다. 그런데 얼마 후 그분이 다시 주민센터를 찾아와 나에게 캔커피를 하나 주시는 거였다. 몇 번을 사양했지만, 그분은 “너무 고마워서 그래요. 내 성의니까 부담갖지 말고 받으세요” 하시며 커피를 건네셨고, 계속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 결국 커피를 감사히 받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그 민원인이 며칠 후 다시 오셨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드렸더니, 미안한 표정을 지으시며 내게 이렇게 부탁을 하셨다.

“제가 서류를 발급해야 하는데 신분증을 깜박 잊고 안 가져 왔네요. 언니는 제 얼굴 아니까, 미안하지만 이번만 그냥 해주면 안 될까요?”

이분이 말씀하신 순간, 며칠 전에 주셨던 그 커피가 생각났다. 그러자 이분에게 “안 돼요”라고 말하기가 어려워졌다. 죄송하지만 신분증은 꼭 가져오셔야 된다고 말씀드리니 민원인은 무리한 부탁해서 미안하다고 하며 돌아갔지만, 이 작은 사건은 내가 공직에 들어온 이후 ‘뇌물’이라는 개념에 대해 조금이나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물론 민원인이 나에게 대가를 바라고 커피를 주신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리 적은 금액의 물건이라도 받지 않는 것과 받는 것의 마음가짐의 차이는 너무나 컸다.

위에서 언급한 김영란법 저촉 사례가 지나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그렇게 사소한 것까지 법으로 규제할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어디를 가도 빈손으로 가면 실례라고 생각하는 우리나라 정서에는 좀 너무한 처사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겪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작은 성의, 적은 금액에도 ‘마음의 무게’가 생긴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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