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주성 변호사

무죄 추정의 원칙은 정답이고 유죄 추정의 원칙은 오답입니다. 유죄 확정 판결이 내려지기 전까지 모든 피고인 또는 피의자는 무죄로 여겨지고 이에 따른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무죄 추정의 원칙은 논쟁의 여지없는 법적 진리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부상에서 막 회복해서 메이저리그 복귀한 강정호 선수가 성폭력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기사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피츠버그 구단은 공식적으로 조사절차에 선수가 참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협조하겠다고 했을 뿐 어떠한 제재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강정호 선수는 아무런 문제없이 경기에 나갈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지금은 해당 선수의 활약의 기사를 접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어떻게 가능한 일이었을까요? 비록 예상과 다르기는 했으나 무죄 추정의 원칙에 비추어 당연한 결론에 불과했습니다. 사건에 연루되어 조사대상자이기는 했으나 유죄 판결을 받은 자가 아닌 ‘무죄’의 신분인바 당연히 아무런 불이익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여기 또 한 명이 있습니다. 소속팀을 수 차례 리그 정상에 올려놓은 명장인 전 농구감독 전창진입니다. 카리스마 있게 코트를 지휘하는 모습을 보며 향후 한국 농구계에 큰 족적을 남길 것이라 기대하던 감독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경찰의 발표를 통해서 프로농구의 승부조작 혐의를 받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해당 소속팀의 감독에서 사퇴하는 것은 물론이고 영구제명을 통해서 승부조작의 오명을 쓰고 사실상 사회적 죽음을 선고받습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인가요? 바로 우리사회가 너무나도 쉽게 유죄 추정의 원칙을 적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수사가 시작되는 순간 사실상 범죄자의 취급을 받게 되고 당사자의 억울하다는 외침은 모든 범죄자가 의례하는 변명쯤 하나로 치부되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언론은 연일 마치 확정된 범죄자인 것처럼 혐의 사실에 대한 상세하고도 자극적인 기사를 통해 이러한 잘못된 관행에 기름을 쏟아 붓습니다. 과연 이것이 올바른 사회일까요? 해당 감독은 결국 검찰의 최종 수사결과에 의해서 그토록 사회를 들끓게 했던 승부조작은 무혐의 처리되었습니다. 이러한 무혐의 결과는 반대로 짤막하게 처리하는 언론의 태도 등을 볼 때 비록 억울한 누명은 벗었지만 누명으로 인해 선고받은 사회적 죽음의 피해가 회복될 수 있을지는 큰 의문입니다.

극명하게 대비되는 두 가지 사례를 보면서 과연 어떤 사회가 정상적인지 언급할 이유는 없을 것입니다. 무죄 추정의 원칙이 확립된 이유도 후자의 사례와 같은 소위 마녀사냥에 대한 뼈저린 반성에서 나온 것입니다. 억울한 누명이야 무죄 판결로 벗어날 수 있지만 한 번 무너진 사회적 신용과 범죄자라는 낙인이 쉽게 풀릴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적어도 재판을 통한 유죄 확정에 이르기 까지 만이라도 성급하게 범죄자로 낙인찍는 사회적 분위기가 지양돼 더 이상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기를 기대해 봅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