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통대학교 행정학과

비용이란 말은 ‘어떤 일을 하는 데 드는 돈’을, 투자는 ‘이익을 얻기 위하여 어떤 일이나 사업에 자본을 대거나 시간이나 정성을 쏟는 것’을 의미한다. 비용과 투자는 돈과 자원을 사용한다는 면에서는 비슷하나 차이점은 비용은 투입을 투자는 결과를 강조한다는 면에서 차이가 있다. 즉 비용은 투입 지향이고 투자는 결과지향의 속성을 가진다.

2017년 나라 살림 예산안 400.7조원이 심의를 위해 국회에 보내졌다. 바람직한 예산심의는 단순한 비용 항목에 지출하기보다 중장기 효과가 있는 부문에 예산이 배정되도록 해야 한다. 올바른 예산 심의는 정부가 돈을 지출해야 할 부분과 지출하지 말아야 할 부분을 구분하고, 지출해야 할 부분을 먼저 지출해야 할 부분과 나중에 지출해야 할 부분을 구분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구분하는 기준은 많지만, 꼭 고려해야 할 것이 비용과 투자의 구분이다.

그러나 문제는 예산을 편성하는 관료나 이를 심의하는 국회의원이 비용과 투자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관료들은 자기 부처 예산액이 늘어나는 것을 국회의원은 자기 지역구 예산액이 늘어나는 데만 관심을 가질 뿐 그 돈이 제대로 투자되는 것인지는 관심이 없다. 지역구 국회의원의 경우 자기가 노력해서 지역 공원화 사업 예산을 따오는 데에만 관심을 가지지 그 공원이 방치되어 풀이 무성한 것에는 관심이 없다. 관료도 마찬가지이다.

J. 버로스는 ‘문학은 후대에게 대대로 주식 배당을 해주는 천재의 투자다’라고 하고 있다. 다른 말로 인문학에 대한 지출은 투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정부와 대학은 인구감소와 취업이란 명분으로 인문과 사회계열학과 정원을 줄이고 이에 대한 투자를 줄이고 있다. 특히 인문계열 학과를 비용이 들어가는 학과로 생각하고 대학의 평가 지표를 깎아 먹는 비용 유발 학과로 전락시키고 있다.

유명한 교육학자 B. F. 스키너는 ‘교육은 배운 것을 다 잊은 뒤에도 남는 것을 말한다’고 했다. 어린아이에 대한 투자와 교육에 대한 투자는 그 사회의 미래를 보여 준다. 그러나 지금 교육을 위한 전기 사용을 비용으로 생각하여 산업용보다 비싼 전기세를 내야 한다. 여기에 교육을 비용 개념으로 이해하는 관료들이 앉아있으면 규정에 의해 설치한 전등에 불을 켜는 것을 낭비라고 생각한다. 낭비로 생각하니 절전을 하기보다 필요한 전등을 꺼버리는 짓을 한다.

영국 저명한 대학에 유학하였던 한 교수는 공휴일에 도서관에 가니 자기 혼자만 있게 됐다고 한다. 직원에게 필요한 책을 보겠다니 서고의 모든 불을 다 켜서 전기 낭비라고 생각해 한쪽만 켜 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직원은 우리는 한 학생을 위해서라도 도서관을 운영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하고, 이어서 ‘당신이 노벨상 수상자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라는 추가의 말을 잊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나라 대학의 경쟁력이 높지 않다고 비판을 한다. 그것은 교육을 투자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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