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충북작가회의 회장

당장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 보험회사에 전화를 했다. 그런데 한참을 신호가 가더니 “지금은 모든 회선이 통화중이니 다시 전화를 하라”며 통화 중 신호로 바뀐다. 다시 걸고, 또 걸고, 다시 또 걸었다. 계속 통화중이다. 그렇게 30분은 족히 씨름을 한 것 같다. 속에서 천불이 난다. 성질 급한 놈은 숨넘어갈 지경이다.

그래도 명줄이 질긴 탓에 죽지 않고 끈질기게 시도를 한 끝에 통화가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해당 업무를 선택하라며 알아듣기도 힘든 수십가지 전문 용어를 앵무새처럼 지껄여댄다. 속사포처럼 쏘아대는 소리에 내가 물어보려던 의문사안도 잊어먹을 지경이다. 그러고 나서도 1번 눌려라, 2번 눌러라, 3번 눌러라, 몇 번을 누르라는 기계음의 요구에 따라 수없이 반복을 거듭한 후에 드디어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그야말로 천신만고였다.

보험을 들기 전에는 오지 말라고 해도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며 가입을 권하더니, 이젠 개 머루 보듯 한다. 아무리 각박한 세상이라고 해도 사람들 행태가 너무 속보인다. ‘뒷간 갈 때와 나올 때~’라는 옛 속담이 조금도 틀리지 않다.

비단 보험회사뿐만이 아니다. 은행, 기업체, 병원, 관공서가 모두 다 한 꾸러미들이다. 자기들이 필요할 때는 아귀처럼 달려들었다가 막상 끝나면 모든 상담을 자동응답전화기로 돌린다. 그러고는 경영 효율화를 통해 더 나은 고객의 서비스 질을 향상하기 위함이라고 운운한다. 참으로 졸렬하고 속이 훤히 보이는 얕고도 천한 짓거리다. 자신들이 책임져야할 문제를 기계를 내세워 일단 면피를 하고 보자는 의도가 더 커 보인다.

하기야 기계음이나 상담원 목소리나 짜증나는 것은 매한가지다. 어찌 생각하면 기계음보다도 “고객님! 고객님!”하며 지나칠 정도로 목소리만 친절한 상담원이 더 짜증난다. 그 어려운 고비 고비를 넘어 천신만고 끝에 상담원을 만났지만 대화를 하려면 복장이 터진다. 도움이 필요해 전화를 한 고객의 이야기는 귀담아듣지 않고, 규약만 운운하거나 책임 소재를 전가하며 적극적으로 문제해결을 하려는 친절은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이쪽의 답답한 심정을 이야기해도 고객의 이야기는 귓등으로 듣고 교육받은 대로 회사의 입장만 되풀이할 뿐이다. 앵무새처럼 지껄이는 목소리나 기계음이나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 벽창우다.

사람과 대화하고 싶다. 그런데 전화를 걸면 세상이 온통 기계음 천지다. 소통의 부재니 대화의 단절이니 하는 상투적인 용어는 운운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기계고 사람이고 입으로만 때우려하는 요즘 세상의 병리현상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이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지 않고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 해서 되나가나 나오는 대로 지껄이며 순간만 모면하려하는 세태를 곰곰이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한 마디 말이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있다. 한 마디 말의 중요성을 의미한다. 그런데 요즘 영혼도 없이 왜 이렇게 입으로만 때우는 세상이 되었을까? 그것은 한 마디로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지나친 이기심에서 나온 것임에 틀림없다. 내 말에 상대방이야 죽든 살든 나만 잘살면 그뿐이라는 그릇된 생각이 세상에 가득하기 때문이리라. 그렇다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전쟁보다도 무서운 매우 위태로운 위험사회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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