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기원전 206년 진(秦)나라 말기, 반란군의 세력을 모두 규합한 항우(項羽)는 천하의 패권자로 떠올랐다. 이에 자신을 따르는 부하들에게 논공행상을 실시하여 각 지역의 왕으로 봉했다. 유방(劉邦)에게도 공로를 인정하여 파촉 지역의 왕으로 봉했다. 그런데 파촉은 중원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변방지역이었다. 이는 점차 세력이 커져가는 유방을 철저히 고립시키려는 항우의 의도였다. 게다가 항우는 파촉과 경계를 이루는 관중 지역을 셋으로 나누어 각각 왕을 임명하였다. 이는 행여 유방이 관중으로 돌아오는 것을 사전에 막기 위함이었다.

유방은 이런 항우의 속셈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항우의 명을 거역할 수 없었다. 아직은 세력이 약하여 항우의 상대가 되지 못하였다. 그렇게 군대를 이끌고 파촉으로 떠난 유방은 서글프고 치욕스러웠다. 게다가 길 또한 위험천만하기 그지없었다. 낡은 나무다리에 의지하여 벼랑과 절벽을 건너야 했다. 상황이 이러하자 유방의 군사 중에 몰래 탈영을 하는 자가 있었다. 심지어 장수들조차도 도망가는 일이 벌어졌다. 우여곡절 끝에 모든 군대가 파촉에 들어서자 유방은 나무다리를 불태우라 명했다. 이는 항우에게 자신은 관중을 넘볼 마음이 없다는 것을 강하게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어째든 이제 아무도 밖으로 도망가지 못하고, 밖에서 들어오지도 못하게 되었다.

유방은 파촉에서 지략이 뛰어나 한신(韓信)을 얻어 대장군으로 삼았다. 이에 한신은 유방의 야망을 읽어 관중으로 진출할 수 있는 계책을 내놓았다. 한신은 우선 병사 만 명에게 불탄 나무다리를 3개월 안으로 보수하라고 명했다. 그 소식을 들은 관중지역 세 명의 왕들이 코웃음을 쳤다.

“그 공사는 3개월이 아니라 3년이 지나도 하지 못할 것이다. 한신은 어리석은 장수로다. 그런 자를 대장군으로 삼은 유방 역시 이제 그곳에서 명을 다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행여 유방이 다시 나올 것을 우려하여 관중 정문 쪽에 병사들을 집중 배치하였다.

하지만 한신의 전략은 달랐다. 다리복구 공사는 분명 오래 걸릴 것을 알고 있었다. 이는 단지 적을 안심시키려는 외형적 의도였다. 내적으로는 공격부대를 몰래 우회하여 거친 산을 넘었다. 그리고 관중으로 들어서는 북쪽 요충지인 진창을 단숨에 점령하였다. 이어 그 기세를 몰아 관중 지역 세 명의 왕들이 경계를 허술하게 한 뒤쪽을 공격해 모두 무찌르는 쾌거를 이루었다. 결국 유방은 파촉으로 부임한 지 5개월 만에 다시 중원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번에는 항우와 겨룰 수 있는 막강한 세력을 키워 나타난 것이다. 이렇게 하여 마침내 항우와 유방의 초한 전쟁이 펼쳐지게 되었다. 이는 사마천의 ‘사기(史記)’고조본기에 있는 이야기이다.

암도진창(暗渡陳倉)이란 몰래 진창으로 건너간다는 뜻이다. 적의 정면을 공격할 것처럼 해놓고 막상 적이 정면에 병력을 집결 시켜놓으면 방비가 허술한 적의 후방을 공격하는 계책이다.

여름이 지나니 내년 대선을 향한 각 당의 횡보가 분주해졌다. 새로운 인물은 언제나 검증의 함정 앞에서 무너지기 쉽고, 한번 나섰던 인물은 신선함이 부족하여 고배를 마시기 쉬운 법이다. 그러니 싸움에서는 항상 계책이 필요하다. 소인은 자신을 알리려 기를 쓸 것이고, 군자는 상대가 경계를 갖지 않도록 조용히 처신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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