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오(吳)나라 손권은 주유를 대도독으로 삼아 촉(蜀)나라 유비와 연합하여 위(魏)나라 조조를 공격하도록 했다. 오촉 연합군은 양자강을 사이에 두고 조조의 대군과 긴박하게 대치하였다. 그때 대도독 주유가 촉의 군사 제갈량에게 긴급한 상황이라며 무리한 부탁을 했다.

“지금 전군에 화살이 바닥났다고 합니다. 수송보급대가 오기를 기다려야 하지만 그 전에 조조의 군대가 공격해오면 우리 연합군은 크게 패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니 군사께서 급히 화살 10만개를 구해와야겠습니다.”

긴급한 상황이기는 했지만 사실 주유는 똑똑한 제갈량을 평소 크게 시기하고 있었다. 그래서 마침 화살을 핑계로 제갈량에게 무리한 부탁을 하여 이를 어길 경우 그 죄를 물어 죽이고자 하는 커다란 음모가 숨어있었다. 제갈량은 주유로부터 3일 내에 화살 10만개를 구해오라는 군령장을 받고는 바로 그 일을 수행하겠다는 서약서를 써주었다.

“만약 기일 내에 10만개의 화살을 만들지 못할 경우에는 내 목을 바치겠소!”

이어 제갈량은 고민 끝에 한 가지 계책을 떠올렸다. 그런데 제갈량은 이틀 동안 화살은 만들지도 않고 병사들에게 그저 허수아비만 만들도록 했다. 주유의 첩자가 이런 상황을 그대로 전하였다. 그러자 주유가 부하들에게 호탕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갈량의 목은 이미 달아난 것과 다를 바 없다. 하하하!”

약속한 삼일 째 되는 날 새벽, 제갈량은 전함 20척을 동원해 각각의 배에 병사 30명씩을 태우고, 만든 허수아비 1천여개를 배 양쪽마다 푸른 장막을 치고 촘촘히 세웠다. 그런 뒤에 강에 짙은 안개가 피어오르자 전함 출동을 명하였다. 배는 고요히 미끄러져가며 조조의 수군 진영으로 향했다. 강 한가운데 이르자 북소리가 둥둥 힘차고 요란하게 울렸다. 이어 병사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이른 새벽에 갑작스런 적의 출현으로 조조는 깜짝 놀라며 당황하였다. 짙은 안개 속에서 적을 구별하기란 쉽지 않았다. 북소리와 함성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궁수들에게 무차별 활을 쏘라고 명했다. 비 오듯 퍼붓는 화살은 촉의 전함과 허수아비에 꽂혔다. 촉의 전함은 계속해서 북을 치고 함성을 지르며 조조 군대의 무차별적인 화살공격이 계속되도록 하였다.

그렇게 한참을 지나 드디어 해가 뜰 무렵이 되자 제갈량은 철수를 명했다. 진지로 돌아와 꽂힌 화살을 세어보니 주유가 요구한 10만개보다 훨씬 많은 15만개에 달했다. 이렇게 하여 제갈량은 없는 화살을 구할 수 있었다. 이는 나관중의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 있는 이야기이다.

무중생유(無中生有)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낸다는 뜻으로 거짓으로 적을 미혹하게 만들어 원하는 목적을 이룬다는 의미이다. 무는 적을 속이기 위한 위장 전술이며 유는 감춰진 본래의 목적이다. 부족하고 나약한 가운데 어떤 일을 이루고자 하면 철저히 그 의도를 숨기고 거짓으로 상대를 속일 수 있어야 한다. 본래 찢어지게 가난하여 있는 거라고는 불알 두 쪽밖에 없는 사내들이 커다란 부를 이루고 명성을 얻게 된 것은 거짓으로 세상을 미혹시키는 재주가 뛰어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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