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 탄생의 노력·창조적 가치 현대적 해석
세계 11개국 35개팀 아티스트 신작으로 채워
3개 소주제 아래 7가지 테마로 구성 전시

▲ 임혁용 作 '직지-책문'
▲ 무나씨 ‘받아쓰기’
▲ 무나씨 ‘말하고 듣기’

동서양 종교문화 배경 인쇄 유물 비교 조명

예술가 시점의 ‘과거·현재·미래’ 가치 담아

디오라마형식·3D프린터·VR 활용 재해석

황금빛 문명을 꽃피운 씨앗, ‘직지’가 예술로 부활한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 ‘직지’에는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인쇄했다’라는 문구가 명기되어 있다. 또 재미있는 단서도 있다. ‘日(날 일)’자가 세 번 뒤집혀 찍힌 것이다.

총 1만4천21자의 글자가 인쇄된 이 책에 사용된 활자는 5천538종이며 이를 하나 하나 복원한 임인호 금속활자장은 이 자체가 ‘도(道)’라고 했다. 불교의 가르침처럼 수행을 해 나가듯 글자를 하나씩 조판해 가다가 해를 상징하는 ‘日’자는 그 아래위가 비슷한자라 뒤집어졌다. 이런 오자가 직지가 한 목판에 새겨진 것이 아닌 한 활자씩 주조돼 조립된 금속활자임을 증명하는 확실한 단서가 됐다.

우리는 책의 존재를 너무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 기원이 금속활자이며 활자를 만들기까지 수많은 장인의 혁신적인 생각과 노고가 있었다는 것까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14세기 당시, 금속으로 활자를 만들어 인쇄를 한다는 것은 혁신적인 사고의 전환이었다. 지금도 생각을 뒤틀고 바꾼 사람들의 작은 아이디어와 실천은 인류 문명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직지가 탄생하기까지의 숨은 노력과 창조적 가치를 현대 예술로 풀어보는 2016 직지코리아 국제페스티벌 주제전 ‘직지, 금빛 씨앗’.

직지를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금빛씨앗’으로 정의한다. 금속활자의 금빛, 불가능을 꿈꾸었던 연금술사의 금빛, 금빛 태양을 상징하는 ‘날 일자(日)’자를 품은 씨앗을 상징한다.

이번 주제전은 김승민 수석 큐레이터의 기획 아래 한국, 남아프리카공화국, 독일, 터키, 미국, 영국, 이스라엘, 이탈리아, 일본, 중국, 캐나다, 터키 등 11개국 35개팀의 아티스트가 참여하며, 대다수의 작품이 직지에서 영감을 받은 신작이다.

행사가 끝난 후에도 조직위는 다수의 작품을 장기 소장해 국내외 연계전시를 통해 직지를 세계에 알릴 계획이다.

김 수석 큐레이터는 “직지가 인류사에서 중요한 이유는 조판이 가능한 금속활자로 인쇄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책이기 때문”이라며 “직지를 구성하는 중요 요소인 금속활자의 낱글자 하나하나를 디자인, 조각하고 만들어낸 예술가들과 당대 첨단 기술과의 조화를 전시에 담아냈다”고 말했다.

전시는 ‘빛, 그림자를 보다’, ‘빛, 다시 비추다’ 그리고 이를 연결하는 ‘빛과 어둠이 만나다’ 등 3개의 소주제 아래 7가지 테마로 구성된다.

 

●머리말

직지의 가르침과 그 기술적 가치, 그리고 디지털 시대에 직지가 지니는 의미에 대해 가늠해 볼 수 있다.

가장 오래된 글자 ‘알파’와 가장 어린 글자 ‘ㅎ(히읗)’을 이어 처음에서 끝의 의미를 갖는 안상수의 파사드 작업을 시작으로 직지의 주된 내용을 청주 시민들과 900장의 서예 작업을 제작해 이를 만다라의 형상으로 작품화한 최정화의 설치 미술 작품을 볼 수 있다. 13세기에 제작된 목판활자 ‘팔만대장경’과 대장경판이 소장되어 있는 ‘해인사’의 모습을 담아낸 배병우의 HIS1A-001H 연작이 최초로 공개된다. 또 첨단 IT기술을 이용해 한국의 전통적 아름다움을 새롭게 해석한 이이남의 신작도 만나볼 수 있다.

 

●세계사 속 직지

영국의 저명한 학자 베스 멕킬롭이 정리한 언어와 인쇄의 연대기를 그래픽화해 새롭게 해석한 다리오 바툴리니의 작업과 무나씨의 새로운 형식의 벽화 일러스트레이션 ‘정보혁명의 4단계’를 만나볼 수 있다.

또 주제전시에서 종교적 관점에서 바라본 동서양 인쇄 관련 유물들이 전시된다. 구텐베르크 면죄부와 순례자의 거울, 카탈리콘 등 대표적인 기독교 유물과 불가의 가르침을 담은 팔만대장경과 무구정광대다라니경, 유교 사상을 보여주는 측우기와 훈민정음, 용비어천가 등이 전시된다. 각 종교 문화를 배경으로 발달된 동서양의 인쇄술을 유물을 통해 비교 조명할 예정이다.

 

●정보를 담는 인간에서, 책으로, 디지털로

활자의 발명 이후 신속하고 정확한 서체 제작이 가능해졌고, 이는 반복과 동화라는 문화를 이끌었다. 인류는 방대한 지식 정보를 한데 묶어 출판물을 제작하게 됐다. 이 섹션에서는 SNS 시대에 이르기까지의 미디어 발전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구텐베르크 인쇄기와 김달진미술자료연구소의 소장품을 전시한다.

‘동물에 관한 신기한 책(1960)’에서 인용한 이미지와 문구들을 이용해 작업한 터키 출신의 부쥬 야글루의 작품들을 통해 백과사전의 의미를 상기한다. 오늘날 E-book과 태블릿PC를 이용한 현대인들의 독서 방식에 대한 김수희의 작품도 있다. 또, SNS 세계내에서 이뤄지는 정보의 확산에 대해 이야기하는 권지안의 작업을 만날 수 있다.

 

●구텐베르크 은하계, 직지-공간, 테라스

‘구텐베르크 갤럭시’는 캐나다의 문화 비평가 마샬 맥루한의 책으로, 본서에서 마샬은 인쇄문화가 유럽 사회와 인류의 의식구조에 끼친 영향력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이 책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필 돕슨은 캔버스 위에 글자들을 중첩시켜 하나의 복잡한 회로를 연상시키도록 했다. 이 작업은 브리짓 스테푸티스와 이번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오늘날 디지털 작업과 고대 종교의 절대성을 결합시킨 스테인드글라스로 재탄생했다.

야외 공간에는 노션아키텍쳐의 직지와 공간을 잇는 문자나무 다리가 설치되어 있고, 이를 따라 내려가면 현재 직지가 소장되어 있는 프랑스국립도서관 리슐리외관의 이미지를 이용해 작업한 금민정의 미디어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또한 구혜영과 라이프포뮬라, 큐밀리너리의 퍼포먼스도 즐길 수 있다.

●과거, 예술가의 디오라마

과거의 시간성과 초기 금속활자 인쇄의 주조 과정, 그리고 기법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작가들의 작업들로 구성되어 있다.

금속활자장 임인호는 5천538종의 활자를 복원했고 정미는 ‘씨앗’이라는 한글 단어를 일일이 쓴 수천개의 도자 조각을 통해 약한 물성과 단어가 지닌 강력함에 대해 시사하고 있다. 정하눅은 수천 년 전 기술을 직접 익혀 제작한 활자판 위에 그림을 그려냈고, 이광호의 구리 스툴은 금속활자들을 고정시키는 판형틀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됐다. 흙으로 직지의 내용을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는 신용일의 작품은 작업 자체가 부처의 가르침에 따른 수행과 같으며, 엄혁용의 목재 작업은 제목 그대로 사물로서의 ‘책(직지)’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마지막으로 요건 던호펜의 아름다운 작업이 전시 공간의 바닥에 펼쳐져 관람객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현재, 예술가의 플래시백

현대적인 시선으로 직지의 또 다른 가치를 해석하고자 한다. 3D 기술을 이용해 고전 명화를 새롭게 재해석한 미야오 샤오춘과 1천여개의 연필로 종이에 직접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한 드로잉 영상 작업을 비롯해 혁신 기술을 활용한 아티스트들의 작품들이 전시된다.

김수희는 글자에서 변형된 점자를 이용해 현악 3중주의 연주를 상영하고, 전상언은 한국과 프랑스로부터 얻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키보드 위에 가상세계와 현실세계를 공존시키는 월드 와이드 웹(WWW)의 지형도를 물리적으로 형상화했다. 쇼나 키친 또한 자기장을 이용해 서울 도심의 풍경을 제작했고, 김상진은 초기 포스트 구조주의의 해체를 표방해 성서의 내용을 물 위에 프린트한다. 홍경택은 한국 전통 민화인 ‘책가도’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평면 회화 작업과 이를 다시 미디어로 새롭게 재해석한 작업을 선보인다.

 

●미래, 예술가의 미래상

2015년 이후 FACT 리버풀과 스위스 제네바의 CERN에서 개최되는 콜라이드국제시상식에서 영감을 받아 기획됐다. 료이치 쿠로카와의 ‘unfold’는 CEA-Irfu의 우주 물리학자들의 연구와 자료를 통해 10억년 별의 생성 과정을 나타낸 미디어아트를 아시아 최초로 선보인다.

마시멜로 레이저 피스트 또한 4종의 동물의 시각을 예술적으로 재해석한 ‘In the Eyes of the Animals’라는 작품은 360° 가상현실영상을 아시아 최초로 보여준다. 지나 자네키의 ‘Heirloom’은 실제 작가의 두 딸의 조직 세포를 이식해 그들의 얼굴을 제작한 초상작업으로 생물의학 분야에서 3D프린트의 미래와 무엇이 문화와 인종을 구별 짓는지에 대해 시사하고 있다. 세미컨덕터는 CERN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소속 작가로 두 개의 움직이는 이미지 속에 자기장과 진동파 등 보이지 않는 요소들을 시각화한다. 또 캐나다 작가 제레미 베일리는 ‘텔레비전의 미래’를 통해 미디어의 미래상을 제시하고 있다.

특별 전시실에서 만나게 될 작가는 윌리엄 켄트리지로 주제전시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그가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은 문화의 급진적인 확산과 변형, 그리고 다른 세계와의 융합을 서양사적 관점에서 중국 고서 위에 먹으로 표현한 애니메이션 작업이다.

한편 오는 8일 청주예술의전당 대회의실에서 ‘Daydream -꿈이란’ 주제로 작가와의 만남이 진행된다. 삼성전자 디자인경영센터 이경훈 수석디자이너와 서양화가 이세현, 주제전시 참여작가 정미, 김상진 등이 참여해 패널 토의 형식으로 진행된다. 직지가 지니고 있는 창조적, 예술적 가치를‘꿈’과 연관 지어 연사들은 다양한 해석을 제시한다. 전시의 연속선상에서 직지의 창조적 가치를 조명할 예정이다.

대상은 20대 예술 전공자로, 정원은 80명 선착순으로 모집 받는다. ‘꿈이란’ 강연 문의 및 신청은 직지코리아 조직위 전시팀 강연 담당자에게 전화(☏043-271-9361)하면 된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