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충주농고 교장 수필가

하늘에는 해와 달이 뜨고 지고, 춘하추동 계절이 변하는 자연법칙이 있듯이 우리 인간세계에는 인의예지(仁義禮智)의 법칙이 존재한다. 일찍이 공자(孔子)께서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인(仁)에다 두고 그 어진정신을 바탕으로 인류공동생활의 철학을 예(禮)에다 두었다. 따라서 예를 잃어버리면 실예(失禮)라 하고, 예가 결여되면 결예(缺禮)라 한다. 그래서 인간의 모든 행동질서에 예를 모르면 무례(無禮)하여 교양인(敎養人)이라 할 수 없다.

우리 조상들은 예로부터 예를 중시해 왔기에 동방예의지국이라고 까지 했다. 예를 잘 지킴으로 해서 가정이 화목해지고 사회공동의 질서가 바로 선다고 생각한다. 현대 문명의 눈부신 발전은 인간의 존엄함을 압도(壓倒)하고, 금전만능의 위력 앞에 인본중심(人本中心)의 가치관은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다.

인명을 경시하는 발원지가 도대체 어디일까. 인간의 측은지심(惻隱之心)과 겸양지덕(謙讓之德)은 분명히 가정에서 생겨나는 것 인즉, 가정이 그 발원지가 아닐까.  이 사회가 가정을 기초단위로 구성되고 그것이 핵가족중심으로 변한지도 오래다. 따라서 가정에서 예(禮)를 지키는 부부생활이 근원이 아닐까. 실제로 어느 부부의 이야기를 예로 들어 본다.

처녀 때는 수줍음이 많아 크게 웃지도 않았고. 입만 방긋했던 여자가 결혼을 하고부터는 수줍음도 없어지고 조심성도 사라져 아무대서나 옷을 벗어던지고 입이 찢어져라 하고 웃어댔다. 그러더니 남편 앞에서는 소리 내어 방귀까지 뀌어댔다. 부인이 소리 내어 크게 웃고 거침없는 행동에 남편은 정나미가 뚝뚝 떨어졌다. 참다못한 남편이 입을 열었다. “당신 너무하는 것 아니야. 부부사이라도 최소한 지켜야할 예의는 있는 법이오.” 그러자 부인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꾸를 했다. “어때요, 부부사이에 그것도 못 봐줘요.” 이 이야기에서 부부사이 사랑하는 사이 라고해서 너무 쉽게 무례를 범해도 될까하는 것이다.

깨끗한 옷 일수록 때가 묻기 쉽듯이 친밀도가 높을수록 상처받기 쉽기 때문이다. 부부간에도 예의를 깍듯이 지킴으로서 부부간의 정도 더 해지고 사랑의 순수함도 더해진다. 자라나는 자식들도 부모를 닮아 예의를 잘 지킬 것이다. 자녀는 전적으로 부모를 닮기 때문이다. 부모가 영남 말을 하면 영남 말씨를 배우고 부모가 서로 싸우며 다투면 자식도 커서 그리된다. 자녀들의 인품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것은 생명일 뿐 자녀가 자라나서 어떤 인간이 되어 살 것인가는 뼈와 살을 녹이는 인내와 희생에서 나오는 부모의 가르침이 좌우한다.

좋은 가정은 부부사이가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고 예의를 지키는데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우리사회가 무질서하고 험한 것도 깊이 생각해보면 가정에서 부부사이에 예의를 지키지 못한 탓이 아닐까. 그러기에 알면서도 지키지 않는 무례한 행동을 자라나는 아이들만 탓할 일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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