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디제라티 연구소장

조선시대 세조임금은 피부질환으로 강원도 오대산의 상원사 계곡에서 목욕을 할 때 선재동자(善財童子)가 나타나 병을 낫게 했다는 전설로 유명해져 지금은 치유(治癒)의 숲길이라고 하여 선재길로 불리고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 곳곳에는 효험(效驗)한 약수가 많다. 이에 ‘동국천품’에 수록된 우리나라의 유명약수 아홉번째 소개는 아래와 같다.

경북 예천군(醴泉郡)의 북쪽 담 바깥 관혁동(墻外貫革洞:현재 예천읍 노하리)에 주천(酒泉)이 있다. ‘군방골샘’이라고도 부르는 이 우물은 예천이라는 지명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짐작하게 해준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 경략(經略:名將) 양호(楊鎬)가 이 물을 마시고 이름 그대로 “예천(醴泉:단술 샘)이로구나”하고 감탄하여 군의 이름이 예천으로 불리기 시작했다는 말이 이 샘이다. 물맛이 달 뿐 아니라 겨울엔 따뜻하고 여름철엔 차갑다. 

경북 순흥(順興:영주시의 옛 지명)의 부석사(浮石寺) 동쪽에 선묘정(善妙井)이 있다. 이 우물에는 신라시대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와 관련된 선묘(善妙) 신화가 전해지고 있다.

의상대사는 불법을 구하기 위해 원효대사 함께 중국으로 유학을 떠나지만 원효는 중간에 깨달음을 얻고 되돌아 온다. 의상이 도착한 곳은 산동반도 북쪽에 위치한 등주(登州)였다. 이곳에서 독실한 불자였던 유지인(劉知仁)의 집에 잠시 머물게 되는데, 이 집의 딸 선묘(善妙)라 불리는 아름다운 처녀가 의상대사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진다.

의상대사가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올 때 그를 흠모하던 선묘(善妙)가 서해 바다까지 따라와 떠나가는 배를 향해 바다에 뛰어들어 용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사랑하는 임이 무사히 신라에 도착할 수 있도록 호법룡(護法龍)이 되어 의상대사가 탄 배를 호위하게 된다.

한 여인의 사랑 이야기가 여기에서 끝났다면, 지금까지 전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의상 곁을 떠날 수가 없었다. 의상대사가 신라로 돌아와 화엄(華嚴) 사상을 선양하기 위해 부석사를 창건할 때도 선묘의 사랑은 그 위력을 발휘한다. 의상대사가 부석사를 지으려고 할 때 그곳에는 부랑자들이 많아서 어려움을 겪고 있을 즈음 선묘는 신통력을 발휘해 커다란 바위가 공중을 날아다니도록 했는데, 이를 본 부랑자들은 무서움에 그곳을 떠났고 의상대사는 무사히 절을 지을 수 있었다고 전한다.

이 곳은 선묘라는 한 여인의 사랑으로 탄생한 사찰이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부석사인데 부석(浮石)은 글자 그대로 ‘나는 돌’이다. 지금도 무량수전 옆에 부석이 남아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한 여인의 사랑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우리 고장 초정약수 인근 선암리(仙岩里)에 꼬끼할미 바위가 있는데 이곳에 약수와 관련한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필자가 20여 년 전에 이곳을 현지 주민의 안내를 받아 직접 답사했을 때 꼬끼바위는 산정상 중간 쯤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주변을 자세히 조사했지만 조그마한 옹달샘 조차 발견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이 전설은 꼬끼할미가 초정약수와 관련된 설화인 것으로 볼 때 이미 오래전부터 약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스토리텔링으로 잘 활용해 초정약수를 홍보하는데 일조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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