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 박지원 글 ‘화포’에 매료…10년간 중국 등 다녀

염색가 신상웅씨 ‘쪽빛으로 난 길’“내 손으로 물을 들인 것이 분명한데도 내 것이란 확신이 들지 않았다. 나는 산모가 아니라 산파인 셈이었다. 맥이 탁 풀렸다. 색이란 무엇일까?”

신상웅은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뒤 고향인 충북 괴산으로 내려가 쪽으로 천을 물들이는 염색가다. 그는 흰 무명에 푸른색이 스며드는 모습을 보면 짜릿함을 느낄 정도로 짙은 청색을 편애하는 사람이다.

어느 날 그는 혼란스러운 생각에 빠졌다. 파랗게 염색된 수많은 천 중에서 자신이 만들어낸 작품을 골라낼 자신이 없었다. 천연 염색은 사람이 아니라 자연이 하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신간 ‘쪽빛으로 난 길’은 신상웅이 푸른색에 대한 갈증을 풀기 위해 중국과 일본, 동남아시아로 떠나 보고 들은 바를 정리한 여행 에세이다.

여행을 시작할 즈음 그는 연암 박지원이 쓴 글에서 우연히 ‘화포’(花布)라는 단어를 접했다. 화포는 푸른색으로 염색한 천에 남아 있는 하얀 무늬를 뜻한다. 염색하기 전에 밀랍을 발라두면 그곳만 쪽물이 들지 않는다. 염색가에게 화포는 창작의 영역이었다. 화포의 형태와 화포가 들어갈 위치는 온전히 사람이 결정할 부분이었다.

10년 동안 이어진 그의 여행은 목적이 뚜렷했다.

고유한 색이 어떻게 탄생하는지, 화포의 무늬는 얼마나 다양한지 알아내고자 했다. 그래서 일반 여행객은 관심이 없는 낯선 지역을 찾아다녔다.

저자는 먼저 지금도 주민 대부분이 천을 염색한다는 먀오(苗)족을 만나기 위해 중국 구이저우(貴州)성의 오지로 향했다. 실제로 먀오족이 사는 마을은 곳곳에서 푸른색 천이 넘실거렸다.

중국에서 ‘몽족의 바틱’이란 책을 본 그는 동남아시아의 소수민족인 몽족을 보러 태국, 베트남, 라오스로 떠났다. 쪽빛 염색과 화포를 온전하게 계승하고 있는 마을은 많지 않았지만, 몽족의 일상은 소박하고 평화로웠다. 이어 그는 조선시대 선비인 최부의 중국 체류기인 ‘표해록’을 따라 대운하 주변을 돌아보고, 마지막으로 조선통신사의 기록이 담긴 ‘해행총재’를 읽은 뒤 일본 교토와 도쿠시마 등을 여행했다.

그의 글은 쪽빛처럼 담담하고 깔끔하다. 감상을 구구절절 적는 대신 옛 문헌과 역사 이야기를 많이 소개했다. 마음산책. 368쪽. 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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