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승섭 충북지방중소기업청 비즈니스지원단 상담위원

중소기업 규제개혁 명예옴부즈만으로 활동하면서 기업인 또는 관리자를 만나서 기업 운영에 방해가 되는 규제에 대해서 물어보면 이런 저런 문제점으로 기업운영이 어렵다는 얘기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그렇지만, 기업인에게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규제를 없애거나 개선하려는 시도를 하셨냐는 질문에는 별다른 대답이 없다. 대부분의 대답은 둘 중의 하나다.

첫째, 규제는 불합리한 것이 맞지만, 개선하려고 정부기관에 얘기를 해봐도 고쳐지지 않을 것이 뻔하기 때문에 시도할 필요도 없다는 것.

둘째, 규제 때문에 불편한 점은 있지만 법령에서 정해져 있거나 나라에서 하는 것이니까 규제할만한 이유가 나름 있을 것이다라는 것. 여기에 괜히 정부기관에 얘기해봐야 나중에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추가된다. 만들어진 당시에는 필요했지만 시간이 지나 현재와 맞지 않는 규제가 있을 수도 있고, 불합리하다고 명백히 생각하는 규제가 있음에 이를 벗어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말뚝에 묶여 커서도 말뚝을 벗어날 수 없는 코끼리 격이다.

영국에서는 세계 최초의 교통법에 해당하는 ‘적기조례(Red Flag Act)’를 1861년 시행한다. 법률의 주요내용은 쉽게 말하면 ‘자동차는 마차보다 느리게 달려야 한다’는 것이다. 자동차가 보급되면 마부들이 실직하게 되므로 자동차를 마차보다 느리게 달리게 법제화해 마부들과 마차산업을 보호하려는 취지였다.

이 법은 차량의 최고속도를 교외 시속 6km, 시가지에서는 3km로 제한했다고 한다. 60km, 30km의 오타가 아니다. 6km, 3km가 맞다. 이 법은 30년동안 시행돼ㅅ다고 한다. 이러한 어처구니 없는 규제로 영국은 무엇을 잃었을까? 영국은 산업혁명의 발원지이고 최초로 자동차가 상용화된 나라였다. 영국은 30년동안 이 법의 시행으로 자동차 산업의 주도권을 프랑스, 독일과 미국에 뺏기게 된다. 적기조례라는 하나의 법으로 몇십만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자동차산업을 완전히 내다버린 것이다.

영국의 적기조례는 어이없는 규제였음도 불구하고, 30여년 동안 시행됐다. 그 기간 동안 영국에서도 자동차산업과 관련된 사람들이 무수한 개선을 요구했을 것이지만, 한번 생겨난 규제는 쉽게 바뀌기 어렵고, 여기에 이런 불합리한 상황을 비호하거나 정상으로 용인하는 사람들이 더해지면 비정상 상태가 정상이 되는 것이고 스스로 정당성을 갖게 된다.

불합리한 규제를 개선하기 위해 거창한 집회를 열거나 탄원서를 작성해서 정부기관, 유관기관을 항의 방문할 필요는 없다. 정부는 중소기업, 소상공인의 경영에 불합리한 규제를 개선하고자 국무총리가 위촉한 독립기관으로 중소기업 옴부즈만을 운영하고 있다. 불합리한 규제로 경영에 불편과 애로사항이 있거나 기업운영에는 불편한 규제이기는 하나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것이고 생각하는 규제가 있다면 이를 신고해보자. 그러면 처리결과를 통해서 그 나름대로의 이유를 확인하거나 그 규제가 개선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결과가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이런 개개인의 작은 시도가 결과적으로 우릴 옭매고 있는 말뚝을 뽑아 비정상을 정상화로 바꾸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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