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전국시대 무렵, 연(燕)나라 소왕(昭王)은 대장군 악의(樂毅)에게 제(齊)나라를 공격하도록 명했다. 악의는 질풍노도와 같이 쳐들어가 제나라의 도읍과 성 70곳을 점령하였다. 단지 즉묵성과 거성 두 곳만을 함락시키지 못한 상태였다.

이때 즉묵성을 지키는 제나라 장수는 전단(田單)이었다. 전단은 수비에 일관하며 도무지 성 밖을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악의 역시 성곽만 포위하고 공격하지 않았다. 다만 제나라 백성들이 성 밖을 나오면 음식을 나누어주면서 크게 환대하는 전술을 펼쳤다. 이에 전단은 이대로 있다가는 전멸할 것을 우려하여 적을 이간시키는 계략으로 대항하였다.

어느 날 연나라 소왕이 죽고 혜왕이 즉위하였다. 마침 혜왕은 악의 장군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전단이 그 틈을 이용해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악의가 즉묵성을 공격하지 않는 이유는 기회를 틈타 제나라 임금이 되려는 얄팍한 속셈 때문이다.”

혜왕이 그 소문을 듣고 곧바로 악의를 파면하고 기겁(騎劫)이라는 장수로 교체하였다. 장수가 교체되자 연나라 군대는 크게 동요하였다. 전단 역시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칠흑같이 어두운 그믐날 밤, 드디어 전단이 공격 명령을 내렸다. 성 안에 있는 천여 마리의 소를 징발하여 진홍색 옷을 둘러 입히고 울긋불긋한 용무늬를 그려 넣었다. 그리고 쇠뿔에 날카로운 칼을 비끄러매고 쇠꼬리에는 기름을 먹인 줄을 길게 묶어 놓았다. 그리고 성문을 열고 꼬리에 불을 붙인 소떼를 내몰았다. 뜨거운 불길에 성난 소떼는 미친 듯이 연나라 진영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소떼 뒤에 제나라 정예병사 5천 명이 바짝 뒤따랐다.

한밤중 단꿈에 젖어있던 연나라 군사들은 깜짝 놀랐다. 울긋불긋한 용무늬 소떼를 보고 천신이 강림한 줄 알고는 투지를 상실한 채 모두 도망가기 바빴다. 더구나 그 와중에 기겁 장군이 칼에 맞아 죽자 연나라 병사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이를 기회로 전단은 연나라 군대를 맹추격하여 지금껏 잃었던 성 70여 곳을 잇달아 탈환하고 제나라 도읍을 다시 수복하였다. 이는 사마천의 ‘사기열전’에 있는 이야기이다.

병불염사(兵不厭詐)란 전쟁은 적을 속이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속임수를 통해 자신을 보호하고 적을 이기는 전술 변화를 말한다. 전쟁은 변칙을 발휘하여 적의 정직함을 깨뜨리고, 또 상대가 변칙을 발휘하면 그 변칙을 깨는 또 다른 변칙을 발휘해야 이기는 것이다.

형체가 있는 물건은 모두 이름이 붙어 있으며, 이름이 있는 물건은 모두 이기는 방법이 있다. 적의 형세에 대응하여 아군 또한 형세로 이기려는 것이 정(正)이다. 적의 형세에 대응하여 아군은 형세 없이 이기려는 것이 기(奇)이다. 전쟁은 같은 방법으로 이길 수 없기 때문에 매번 다른 변화가 있어야 이길 수 있다. 고요함은 움직임의 기(奇)이며, 편안함은 수고로움의 기(奇)이다. 배부름은 배고픔의 기(奇)이며, 다스림은 어지러움의 기(奇)이다. 많음은 적음의 기(奇)이다. 내가 수를 내어서 상대가 대응할 수 없는 것이 바로 기(奇)이다. 늘 패배하고 사는 자들은 깊이 새겨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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