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충주농고 교장 수필가

무궁화 꽃이 활짝 피는 8월이 오면, 지금부터 71년 전 나의 할아버지 생각이 난다. 일제 강점기 나는 초등학교 3학년 이었다. 할아버지는 온 가족이 모이는 밥상머리에서 늘 대동아전쟁 말씀을 하시면서

“일본은 결국 망하고 만다. 남의 나라를 강제로 빼앗는 강도짓을 하고 어찌 이기겠는가. 하늘이 용서치 않으리라.”

잠자코 듣고만 있던 아버지께서 “일본이 지금 이기고 있어요, 중국도 빼앗고 싱가포르, 필리핀 남양군도 모두 점령하고 있는데 왜 자꾸 망한다는 말씀만하세요, 남이 듣는 데서는 그런 말씀 하지마세요” 하시고는 자전거를 타고 출근을 하셨다. 할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긴 담뱃대로 재 털이를 탕! 탕! 치시고는 사랑방으로 나가시던 모습이 어쩐지 내 마음속에는 잊혀지지 않는다.

나는 할아버지가 손수 삼아주신 짚신을 신고 책과 도시락을 쌓아 어깨에 메고 학교를 가면 공부는 안하고 매일 험한 산에 올라 솔가지를 땄다. 담임선생님은 솔가지와 숙제로 가져오는 ‘피마자 씨‘는 모두 군함과 비행기기름으로 쓰는 것이라며 일본이 꼭 이겨야 한다고 했다.

무더운 여름 어느 날, 이웃 어른들이 모여 일본에서는 폭탄이 떨어져 많은 사람이 몰살을 했다는 말을 들었다. 어쩐지 파란 여름하늘에 흰줄을 긋고 날아가는 미국비행기를 자주 보게 되고, 너무나 높이 날아 일본비행기는 따라 잡을 수 없다고 들었다. 8.월15일은, 동리 어른들이 모두 냇가 느티나무 아래에 모여 ‘일본이 항복했다는 소문이 있다’. ‘천황폐하가 항복문서에 도장을 찍고 방송을 했다‘고 이제 우리는 해방이다 하면서 풍물을 치고 춤을 추며 대한민국만세를 외쳐댔다. 나는 친구와 함께 풍물패를 따라다니며 생전 처음 보는 태극기를 들고 목이 터져라 만세를 불렸다. 할아버지는 늘 일본은 망한다고 말씀해서 동리에서는 예언(豫言)자로 유명세를 타고, 일본이 이긴다던 아버지는 강원도 삼촌댁으로 멀리멀리 여행을 떠나셨다. 후에 돌아오셔서는 농사일만 하셨다

학교는 휴교가 되었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한글을 배우고 자음 모음을 익혔다. 이듬해 봄 4학년에 올라가 우리말로 공부하게 되니 그때의 기쁨은 71년이지나 내가 할아버지가 된 오늘에도 자랑스러운 일이라 생각한다.

71년 전 일본이 왜 패망했을까를 생각해본다. 1,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던 국제사회질서는 힘이 지배하는 시대였다. 일본군대는 천황폐하 1인을 위한 충성 전쟁을 했지만 미군과 연합군은 가족과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한 전쟁이었다. 목적의식이 달랐기 때문이다, 강대국들이 그어놓은 38선! 공산 민주의 이념투쟁에 앞장선 북한의 남침으로 6·25의 치열한 전쟁 끝에 38선은 휴전선으로 변했다. 지금도 북한은 세습 1인 독재체제로 강성대국을 꿈꾸며 핵과 미사일을 쏘아대며 긴장을 조성하니 언젠가는 망할 것이다.

한국이 참혹한 전쟁의 잿더미에서 오늘의 경제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것은 약소민족의 설움을 딛고 쓰라린 전쟁과 가난을 극복하고자 하는 강인한 국민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의 동북아 정세는 미·일·중 의 패권 경쟁이 계속되고 있다. 툭하면 남중국해 군사 훈련이 그것이고, 북한의 핵개발과 미사일발사에는 입을 다물고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자는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중국이 바로 그것이 아닌가.

나라 잃은 36년의 설움이 어떠한가를! 약소국가의 비애가 어떤 것이지를! 배고픔과 가난의 아픔이 어떤 것인지, 경험하지 못한 세대는 모른다.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위한 정책에는 국론분열이 있을 수 없다. 국민의 단합된 한 목소리가 이 땅에 평화를 지키는 힘이 되리라. 광복 71년을 맞아 일본 패망을 주장하던 할아버지의 예언을 상기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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