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희 수필가

모처럼 현미밥을 지었더니 수저를 드는 남편의 낯빛이 좋지 않다. 무슨 논리인지 모르지만, 남편은 현미밥을 먹으면 소화가 안 되고 밥맛이 없어진다고 한다. 입맛이 까다로운 편이지만 반찬 투정은 하지 않는 남편이 왜 밥 타박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남편은 어린아이처럼 흰 쌀밥만 고집한다. 성인병이 걱정되어 현미라도 섞는 날은 다 먹을 때까지 짜증을 부려 식탁 분위기가 싸늘하다. 아침 밥상머리에서 잔소리하는 남편 때문인지 간밤에는 밥 먹는 꿈을 꾸었다.

밥 먹고 자라는 친정어머니의 목소리에 이불을 밀어내고 나오니 밥그릇 놓을 자리도 없이 한 상 푸짐했다. 고등어 맛이 알맞게 배 잘 무른 무를 한입 베어 먹고 된장찌개 한 숟가락을 떠먹는데 어째 기분이 이상했다. 아, 엄마는 돌아가셨는데, 입안 가득 밥을 넣고 씹으면서도 엄마 생각에 벌떡 일어났다.

꿈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내 앞에서 고등어 살을 발라주시던 어머니는 간데없고 사방이 깜깜했다. 꿈에서 어떻게 그런 맛을 느낄 수가 있을까. 어머니가 해주신 밥을 생시보다 더 선명하고 맛있게 먹었던 생각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어머니가 떠나신 지 한 달이 지났다. 아직도 믿기지 않아 걸핏하면 불면의 밤을 보내는데 방금 다녀가신 어머니를 떠올리니 하염없이 눈물이 흐른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한 달 전 ‘이렇게 못 일어날 줄 알았으면 평소에 너한테 밥 더 자주 해줄 걸 그랬다’고 하시더니 끝내 마음에 걸리셨는지 꿈속까지 홀연히 다녀가셨다. 부끄럽지만 쉰 살이 넘도록 어머니가 해주는 밥만 먹었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 병원에 계시던 8개월 빼고는 한평생 밥상만 차리신 것 같다. 밥상 앞에 앉으면 평생을 고독하게 주방에 혼자 서 계시던 어머니의 뒷모습이 아른거린다. 다들 잠든 새벽녘에 육 남매의 도시락을 싸던 어머니의 방은 부엌이었다. 자식들 먹이려고 곰국이라도 고을 때면 혹여 국물이 졸아붙을까 주방 바닥에 허리를 고이고 잠깐 눈을 붙였다가 깜짝 놀라 일어나시던 어머니. 밤새 쪽잠을 자며 끓여낸 희뿌연 곰국은 바로 어머니의 등골이었다.

어머니를 떠올리면 저절로 밥상이 차려진다. 어머니의 몸 어느 곳에나 숟가락을 대면 하얀 쌀밥이 쏟아져 나올 것만 같다.

밥은 사람들한테서 믿음을 건져 올린다. 가난과 비곤함에 절어 날이 선 푸른 눈매의 사람들, 퇴색된 열정들까지도 밥을 나누면 구순 해진다. 미운 사람 밥 한 숟가락 더 주라고 표현할 만큼 길쭉하고 둥근 모양이 제각각인 쌀알이 엉긴 밥 속에는 수많은 감정이 섞여 있다.

자주 말썽부려 어머니 속을 썩이던 남동생이 산불을 냈다. 이른 봄 연둣빛 희망에 들떠있던 산은 귀가 얇아 바람이 이끄는 대로 불길을 넓혀갔다. 누구 짓인지 큰일 났다고 혀를 차며 불구경하던 사람들 사이에 엄마와 나도 끼어 있었다. 불을 끄고 경찰하고 지서로 가셨던 아버지는 중학교에 다니던 동생 대신 벌금 쪽지를 받아 들고 오셨다. 그날 밤 어머니는 다락방에 올려놓았던 잘 익은 호박을 꺼내 노란 호박국을 끓였다. 겁에 질려 고개도 들지 못하는 동생한테 속을 편하게 해주는 호박국을 먹이려는 어머니의 애틋한 마음이 녹아든 밥상이었다.

밥을 나누는 일은 마음을 나누는 일이다. 입을 열면 자연스럽게 마음이 열린다. 사람의 기억 중에서 가장 오래도록 기억되는 것은 맛이라고 한다. 또한, 한 번 길든 입맛은 절대 길을 잃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사람의 혀는 꽤 지조가 있는 것 같다. 아직도 내 혀가 기억하는 최고의 밥맛은 친정어머니가 해주신 밥이다. 친정어머니의 밥은 맛이 예쁘고 곱다. 깔끔한 성품처럼 쓸고 닦은 어머니의 살림살이와 닮은 윤기가 도는 맛이다. 밥맛이 곱고 예쁘다고 하면 참, 별나게 표현한다는 이들도 있겠지만, 엄마의 밥맛을 어떻게 달리 표현할 문장이 없다.

어머니의 밥은 자연을 닮았다. 자연은 몸에 해롭지 않도록 스스로 해독하는 법을 안다. 당신 몸의 절반을 떼 내 자식을 빚은 어머니의 손도 그렇다. 그래서 어머니가 해주시는 밥은 탈이 없고 든든한 것 같다.

어머니의 밥맛은 무쇠솥이 넘치거나 눌어붙지 않게 불꽃을 조절하며 긴 시간 아궁이 앞을 지키던 인내의 맛이다. 매운 시집살이 속에서 불꽃을 수백 번 피우고 이울며 질곡한 세월을 살아낸 어머니만의 지혜일 게다.

못난 딸이 못 미더우셨을까. 어머니는 돌아가셔서도 밥 많이 먹고 힘내라며 든든한 밥상을 차려주셨다. 평소 같으면 장례식장에서 밥 먹는 일은 어림도 없는 일인데 웬일인지 어머니를 빈소에 모셔놓고 나는 밥을 먹었다. 내가 나를 믿을 수 없을 만큼 메밀 부침개와 육개장이 맛있어 연방 젓가락이 입안을 오르내렸다.

화장터 온 지 두 시간이 지났을까 벌겋게 달군 화로에 들어간 엄마는 한 줌의 하얀 가루가 되어 나왔다. 어머니를 품은 하얀 백자 항아리는 어머니의 삶을 말해주듯 정갈하고 소박했다. 늘 어머니가 내게 해주시던 밥처럼 따뜻한 백자 봉분에서 어머니의 성품이 그대로 전해져 한동안 가슴에서 내려놓지 못했다.

어머니를 보내면서 생각한다. 아직도 밥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어머니처럼 나는 누군가한테 따뜻한 밥으로 산 적이 있었던가. 기분에 따라 밥투정을 하는 남편한테 나는 어떤 맛으로 기억될까. 기분이 안 좋은 날은 쌀밥을 해줘도 고두밥이니 진밥이니 하면서 밥 타령을 하는 남편은 혹시 나를 밥도 제대로 못 짓는 여자로 생각하지는 않을까. 다시는 어머니가 해주신 밥을 먹을 수 없다고 생각하니 남편이 밥 타박을 해도 화가 나지 않는다. 그래, 남편 입에 맞는 밥 해주는 것이 뭐가 어려우랴.

내가 친정어머니의 예쁜 밥맛을 기억하듯이 어쩌면 남편의 혀도 어렵던 시절 귀하게 먹던 기름기 좔좔 흐르는 하얀 쌀밥만을 기억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