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시인 충북예술고 교사

요즘 아파트에 붙는 이름을 보면 가관입니다. 전 세계의 언어가 총 동원돼 아파트에 붙는 바람에 우리나라의 주소지는 외국의 언어로 넘쳐납니다. 우리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요? 언어가 의사전달의 도구인데, 굳이 쉬운 우리말을 두고 어려운 남의 나라 말로 하려고 드니 참 이 어이없는 허영심을 어찌하면 좋다는 말입니까?

우리나라의 지명이 큰 변화를 맞는 것은 두 차례입니다. 신라 경덕왕이 쇠약해진 왕권을 강화해보려고 중국식 지명으로 모조리 바꿉니다. 물론 국가 운영방식을 바꾸면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때 지금 우리가 쓰는 큰 고을들의 이름이 대부분 결정됩니다. 그리고 그 후의 지명들은 그런 추세에 맞추어 중국을 모델로 하여 점차 이름을 확대해 나가는 정도입니다. 그리고 조선에 이르면 그 이름들이 점차 각 지역에서 내면화되면서 정서를 자극하는 말로 적응해갑니다.

그렇지만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지배층이 가리키는 동네이름과 그 동네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이 같지 않았습니다. 지배층은 한자로 번역된 형태의 이름을 불렀고 백성들은 그냥 우리말로 불렀습니다. 서로 섞일 일이 별로 없었고, 백성들이 굳이 어려운 관청용어를 알아야 할 필요도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 근대까지도 각 지방의 이름들은 원형 그대로 보존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각 동네 이름이 행정구역 명칭으로 모두 바뀌는 사태가 최근에 일어납니다. 즉 일본이 통치하기 시작하면서 그런 일이 일어납니다. 일본이 조선을 삼킨 이후 가장 먼저 한 일이 호적 정리와 행정구역 개편입니다. 호적은 세금 걷는 일 때문에 가장 중요한 일이어서 면서기들이 호적을 정리하죠. 그래서 그때 이름 없이 평생을 살던 여인들이 처음으로 이름을 갖습니다. 끝에 주로 ‘자'로 끝나는 일본식 이름이죠. 끝내 이름을 갖지 못하고 무슨무슨 김씨라고 이름을 적는 경우도 많았죠.

그렇지만 우리의 생각을 통째로 뒤흔드는 사건이 면서기들의 펜 끝에서 일어납니다. 행정구역 개편으로 인해서 리 단위까지 이름이 정리된 것입니다. 그 전에는 면 단위 정도에서 그쳤는데, 일제 강점기에 이르러 비로소 동네의 작은 단위까지 리로 편입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면서기들이 한자로 적습니다. 그런데 발음되는 대로 적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 멋대로 번역하여 적습니다. 문제는 그렇게 해서 결정된 동네 이름이 점차 본래의 이름을 밀어내고 주인행세를 한다는 것이죠. 실제로 행정명칭이 동네의 원래 이름을 갈아치웠습니다.

그래서 이 책이 더욱 돋보이는 것입니다. 각 지역에 나타나는 고유 지명들을 가능한 한 많이 채집하여 그것의 뜻을 최대한 밝혔습니다. 그래서 우리 땅의 이름을 연구하려면 이 책을 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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