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주(周)나라 황실이 쇠약해지자 천하는 제후들이 득세하기 시작했다. 그중 진(秦)나라는 강대국으로 흉폭하며 탐욕스러웠다. 어느 날 군대를 동원하여 주나라 황실을 협박하였다. 천자를 상징하는 9개의 솥인 구정(九鼎)을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주나라 임금은 어찌할 바를 몰라 신하들에게 의견을 구했다. 이때 연로한 안율(顔率)이 나서서 진언하였다.

“폐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소신이 이 무도한 일을 해결하겠습니다.”

안율은 곧바로 제나라로 가서 구원을 요청했다.

“진나라가 무엄하게도 천자의 솥을 달라고 강요하고 있습니다. 주나라의 신하들은 그럴 바에야 차라리 제나라에 보내는 것이 낫다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생각건대 위기에 빠진 황실을 구하는 것은 대왕에게 명예로운 일입니다. 더불어 그 보답으로  구정까지 챙기시기 바랍니다.”

제나라 왕은 천자의 상징인 구정을 얻는다고 하자 몹시 기뻐하였다. 급히 병사 5만을 보내 주나라를 위기에서 구원하였다. 얼마 후 이번에는 제나라가 구정을 요구하였다. 이에 안율이 제나라를 방문하여 아뢰었다.

“주나라 황실은 대왕의 도움으로 사직이 안정되었으니 그 보답으로 구정을 드리고자 합니다. 대왕께서는 어느 길로 천자의 솥을 운반하시겠습니까?”

제나라 왕은 인접한 양나라나 초나라를 통해 운반하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안율이 대답했다.

“양나라나 초나라는 호시탐탐 천자의 솥을 노리는 자들입니다. 그 길로 가서는 아무리 제나라가 강하다 하더라도 빼앗기고 말 것입니다. 그러니 다른 안전한 길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구정이란 일명 구룡신정(九龍神鼎)이라 합니다. 금속으로 만든 발이 셋, 귀가 둘 달린 크고 귀한 솥입니다. 구정을 갖는다는 것은 천하를 다스릴 공명과 정통성을 갖는 것입니다. 우리 주나라에서는 구정을 제나라로 옮기기 위한 준비를 다 마쳤습니다. 하오니 대왕께서는 인력을 동원하여 안전한 길로 옮겨가시기만 하면 됩니다. 다만 천자의 솥은 민간에서 쓰는 간장 종지처럼 간단하게 옮겨갈 물건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새나 들짐승이 옮길 수도 없습니다. 그 옛날 주나라가 은나라로부터 구정을 옮겨올 때 솥 하나를 9만 명이 끌고 왔습니다. 모두 아홉 개이니 81만명을 동원했던 것입니다. 여기에 호위병과 인부, 잡부 들을 포함하면 90만이 넘어섭니다. 대왕께서야 그 정도 인력은 충분히 동원하실 수 있겠지만 아직 경로를 정하지 못하셨다 하니 당분간 주나라에 소중히 보관하고 있겠습니다.”

제나라 왕은 90만명을 동원해야 한다는 말에 그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는 인구의 절반이나 되는 규모로 도무지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구정을 옮기는 일은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주나라 황실은 안율의 지혜로 위기를 모면하게 된 것이다. 이는 유황이 지은 ‘전국책(戰國策)’에 있는 이야기이다.

지귀면화(智貴免禍)란 지혜는 재난과 불행을 벗어나게 해주니 소중하다는 의미이다. 살다보면 누구나 위기를 당하게 된다. 그럴 때 자신의 능력만으로 해결하는 것도 좋겠지만, 되도록이면 경험 많은 집안의 어른이나 나라의 어른에게 지혜를 구하는 것이 상책이다. 한번 일을 그르치면 죽은 자는 다시 살릴 수 없고 망한 나라는 다시 세울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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