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시인 충북예술고 교사

문학사라는 제목이 달린 책을 읽다보면 글도 그렇고 내용도 그렇고 마치 쇠고랑을 찬 것처럼 무겁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작품을 설명하면서 그 밑에 각주들이 족쇄처럼 매달려서 도대체 진도가 나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우연찮게 서점에서 이 책의 몇 쪽을 넘기다가 아예 사들고 나왔습니다. 제 전공이 문학인 까닭도 있겠지만, 그 동안 읽어온 문학사와는 그 경쾌한 문체며 논리의 정연함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도시 생활을 하다가 소나무 숲이나 대나무 숲에 들어가면 서늘하면서도 시원한 느낌이 나듯이, 이 책에서 그런 상쾌한 기분이 났습니다.

이 책은 1939년 9월부터 조선일보에 연재해 나중에 책을 엮은 ‘신문학사’에다가 임화의 중요한 글들을 몇 가지 더 붙여서 편집해 낸 책입니다. 이 이력에서 보듯이 문학사라고 하기엔 좀 황당하다는 생각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근대문학이라는 게 조선이 일본에 망하면서 분명해지는데, 1939년이라면 1900년부터 쳐도 불과 40년도 채 안 된 기간을 서술한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1919년 3·1운동 이후에 신문과 잡지가 출판되면서 근대문학도 왕성하게 펼쳐집니다. 이렇게 따지면 불과 20년간의 문학을 문학사라는 이름으로 서술하게 되는 것이니, 역사라고 하기엔 좀 민망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저자도 말하는 것이지만, 이 근대문학이 하도 독특해서 이런 서술과 정리를 통해서 새로운 문학의 활로를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작업이 가능했으리라 봅니다. 우리의 근대문학은 나라가 망하는 과정에서 너무나 급작스럽게 서구문학의 형태를 수입하고 거기에 적응하면서 새롭게 이식되다시피 전개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원래 있던 양식들이 새로운 양식과 만나면서 정리될 기회를 얻기보다는 이미 있던 것을 새로운 것이 밀어내고 완전히 이식하는 난폭한 방식으로 문학사가 진행됐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과정을 정리한 것이 이 책입니다.

이후 한국의 문학사는 임화가 제시한 이 방법에 대한 반성과 자각으로 정리됐습니다. 그래서 초기에 임화가 제시한 이 방법에 대해 어떻게든 연구자들은 피해갈 수 없게 됐습니다. 그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장 강하게 지닌 사람이 서울대 교수를 지낸 김윤식입니다. 김윤식은 수많은 책을 냈지만, 가장 야심만만하게 낸 책이 김현과 함께 낸 ‘한국문학사’였습니다.

그렇지만 이 책이 임화의 문학사를 넘어섰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읽어보면 멀미가 납니다. 논리의 현학성과 그것을 서술하는 문체의 난삽함 때문입니다. 임화의 문학사와 비교하면 상대가 안 됩니다. 그만큼 임화의 글은 쉽고도 날카롭습니다. 천재라는 수사가 아깝지 않은 인물입니다.

임화는 문학의 사회참여를 강조한 인물입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조선노동당에 가입해 활동하다가 박헌영과 함께 월북을 하고, 나중에는 북한 정권으로부터도 토사구팽 당해 박헌영과 함께 간첩죄 명목으로 처형됩니다. 한국 근대사의 풍운아라는 생각이 듭니다. 풍운아의 결말은 대부분 비극이죠. 그렇지만 그가 남긴 문학사는 그 뒤를 따르는 문학연구자들에게 넘기 힘든 산으로 솟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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