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영철 행복나눔협동조합 대표이사

방학을 한 후 일상이 좀 더 여유롭다. 더위를 피해 저녁나절 간편한 복장으로 아내와 함께 재래시장가는 길이 그래서 재미있는지도 모른다. 매스컴에서는 연일 브렉시트가 어떻고 조선산업이 어떻고 하며 국내경기가 어렵다고들 하지만 시장에 가면 활기가 넘친다.

아내는 시장에 가면 거의 과일을 사는데 외국산 과일보다는 국내산 과일을 더 선호한다. 그 이유는 외국산 과일은 단맛만 강한데 비해 국내산 과일은 새콤달콤해 그 맛이 확연이 다르기 때문이란다. 어째든 아내 덕분에 우리집 냉장고에는 제철과일이 풍성하다.

한 보름쯤 전인가 아내와 함께 가경천변에서 산책을 하는데 수천그루의 살구나무에서 살구가 떨어져 산책로가 노랗다. 옛날 같으면 줍는 사람들, 살구나무를 올라가 터는 사람들로 살구나무가 몸살을 앓을 텐데 먹을 것이 흔한 세상이라 줍는 사람 하나 없다.

산책로 중간부분쯤 걸었을 때, 큰 살구나무 아래로 살이 토실토실하게 오른 살구들이 많이 떨어져 있다. 다행이 풀 속으로 떨어진 살구는 거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한 채 있어서 그 중 큰 놈을 하나 주어서 먹으려 하니 아내가 깜짝 놀란다. “여보, 씻지도 않고 그대로 드시면 어떻게 해요. 가경천이 많이 깨끗해졌다고 해도”하며 못 먹게 말린다.

난 그 순간 아내의 손사래 속에서 희미하나마 어머니의 모습을 본다. 그 때도 아마 지금쯤 일게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가려니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친구들 중에는 비를 맞으며 집에 가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나는 교실에 남아서 우산 갖고 오실 어머니를 기다렸다. 한참이 지나서야 어머니는 커다란 종이우산을 가지고 학교로 오셨다. 어머니와 함께 집으로 오는데 어느 집 담 아래로 노란살구가 여러 개 떨어져 있었다. 나는 침을 ‘꼴깍’하고 삼켰지만 진흙에 떨어진 살구를 주어서 먹을 수가 없어 우두커니 서서 살구나무만 쳐다보았다.

앞서서 걷던 어머니는 그런 나를 보시더니 “야야, 진흙에 떨어져 먹을 수 없으니 그냥 가자. 남의 살구나무를 마음대로 털 수도 없고”하며 나를 달래셨다. 그러나 어린마음에 노란 살구가 먹고 싶어서 엄마에게 떼를 쓰기 시작했다. 한참을 달래던 어머니는 할 수 없다는 듯 진흙 속 떨어진 살구 한 개를 주우셨다. 그리고는 살구를 낙숫물에 씻으시더니 다시 어머니 혀로 살구 구석구석을 닦으셨다. 혹시 붙어있을 이물질을 찾아내듯이 그 때 새콤달콤한 살구의 맛은 지금도 생생하다.

나는 아내의 말류에도 불구하고 살구를 입에 넣고는 그 맛을 음미해 본다. 비록 어머니께서 주신 살구보다 맛은 없지만 그래도 살구의 향은 내 입안 가득히 퍼지기 시작한다. 아니 어머니의 사랑이 내 온 몸 가득히 퍼지고 있다고 하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일지도 모른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