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충북작가회의 회장

며칠 전 자주 만나는 선배와 저녁 잘 먹고 기분 좋게 술까지 한 잔 했다. 그러고도 헤어지기 아쉬워 입가심을 핑계로 찻집에 들려 차를 마시다 사단이 났다. 세월호 때문이었다.

그 선배는 입만 열면 80년대 민주화운동을 역설하며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자신의 무용담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다. 그런 선배가 차를 마시다 이상한 소리를 했다. ‘멸치 밥이 다 된 시체를 건져 뭐하냐’, ‘쓸데없는 일에 세금을 낭비하고 있다’는 전형적인 꼴통들 얘기를 그 선배가 앵무새처럼 뇌까리고 있었다. 나는 설마하고 내 귀를 의심했다. 민주화운동의 선봉장임을 자처하며 불의와 불법을 똥보다도 더럽게 강변하던 선배가 할 이야기는 아니었다. 가슴 저 밑바닥에서 견디기 힘든 뭔가가 치밀어 올랐지만, 그동안 쌓아온 인간관계와 정리를 허물어뜨리기 싫어 꾸역꾸역 참고 있었다. 그런데 그다음 대목에서는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

“그만큼 받았으면 됐지, 자식 팔아 돈 벌려고 하냐?” 그 이야기를 하며 선배는 유족들을 경멸하는 표정까지 지었다.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

“형 가족이라도 그렇게 말할 수 있어! 돈만 많이 주면 부모형제도 팔겠네!”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나 나와 버리고 말았다. ‘세상을 알려면 넌 아직도 멀었어. 그래서 넌 안 돼!’라는 선배의 충고가 내 뒤통수를 때렸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평생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퇴임한 어떤 교수님은 ‘나라를 위해 일하다 그런 것도 아니고, 단지 여행가다 죽은 것을 왜 나라에다 책임을 돌리느냐’고 했다. 참으로 지당하신 말씀들이다. 그러나 한 가지 놓치고 있는 중요한 것이 있다. 그들이 그토록 사랑하는 국가의 실체다.

지난 6월 중순 잠수사 김관홍씨가 사망했다. 그는 세월호가 침몰하자 생업도 포기하고 스스로 진도에 내려가 시신인양작업에 참여했던 사람이다. 그랬던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국가가 책임을 회피했기 때문이다. 민간 잠수사들은 아이들 시신이라도 부모의 품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힘겨운 작업을 강행했다. 그러나 수색작업이 끝난 뒤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신체적·정신적 후유증뿐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무리한 수색작업으로 동료 잠수사가 사망하자 해경으로부터 고소까지 당했다. 포상이 아니라 죄를 씌우는 몰염치한 짓거리를 국가가 저지른 것이다. 몰염치하다. 이를 따지는 청문회에 나온 주무부처 장관은 ‘모른다’거나 ‘조사 중이니 기다려보자’며 발뺌했다. 이것이 우리의 국가이며 정부의 실체다.

우리는 그날 종일 생중계되는 텔레비전을 보며 ‘곧 구조하겠지’ 철석같이 믿으며 이제나저제나 무언가 나타나기만을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국민은 다른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가 국민에게 의무만 강요할 것이 아니라 국가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라는 것이다.

단지 자신이 당한 일이 아니라 해서 정당한 요구조차 매도하는 이기적인 국민이 있으니 국민의 충복이라는 국가 고위 공직자들이 ‘천황폐화 만세’나 외치고, ‘민중은 개·돼지’라며 국민을 업신여기는 것이다. 이런 국가를 진정 민주국가라 할 수 있겠는가. 지금 누가 누구의 세금을 축내고 있는가. 법으로 그런 것들을 처단하지 못한다면, 폭탄이라도 던져 그 이기심과 교만함을 징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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