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통대학교 행정학과

지금 정치권의 3당은 당 운영과 관련해 현재를 비상사태로 규정하고 비상대책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김희옥 전 정부공직자윤리위원장으로 하는 새누리당은 혁신비상대책위원회, 김종인 의원을 대표로 하는 더불어민주당은 비상대책위원회, 국민의당은 원내대표인 박지원 위원장으로 있는 비상대책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그 비상이라는 것이 새누리당은 4·13 총선 패배, 더불어민주당은 당내 갈등, 국민의당은 소속의원의 리베이트 사건으로 당 대표가 물러나면서 발생한 것이다. 우리의 정치권이나 사회는 대표의 사퇴로 모든 책임을 없던 것으로 하려는 전통이 있다. 그러면서 관행적으로 비상대책위원회라는 것을 만들어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그러나 비상대책위원회는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문제를 무마하고, 문제를 문제화하는 것을 억제하는 메커니즘이 되어 있다.

이론적으로 위원회는 합의제 기관으로 특정한 해결과제가 있고, 문제 해결에서 조정이 요구되는 경우에 유용하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책임 전가와 책임 한계의 모호, 조직 운영의 통일성 저해, 비밀성 확보의 어려움, 의사결정의 지연 등이 지적되고 있다. 또한, 계급제 전통이 강한 조직에서 위원회는 합의제 형식으로 운영되기보다는 위원장 중심의 단독제 형태로 운영되는 문제점을 가진다.

지금 3당의 비상대책위원회는 위원회제의 장점을 활용하기보다는 위원회제가 가지는 단점과 한계만을 가지고 있다.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새누리당의 4·13 총선 패배의 책임을 없던 것으로 하고, 더불어민주당의 당내 갈등은 해결하기보다 잠재화시키고, 국민의당의 리베이트에 의한 신뢰 추락은 당이 아닌 관련 국회의원 개인 문제로 치부하고자 한다. 3당의 비상대책위원회를 보면 위원은 없고, 위원장만 존재하는 듯하다. 실제로 더불어 민주당 홈페이지를 보면 김종인 의원이 당 대표로 인사말을 하고, 국민의당에는 당 소개로 안철수 대표의 기자회견문이 그대로 있다.

대한민국을 대표한다고 하는 3당은 비상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비상이란 말을 사용하고, 비상사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도 모르면서 위원회를 구성하고 있다. 그 위원회의 구성 또한 절차적 정당성이 없으니 선출된 위원이 권한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위원회는 어떠한 결정도 하지 않고, 할 수도 없는 형식적 위원회로 전락해 있다.

정치는 사기이고 속임수라고 한다. 그러나 사기와 속임수가 정치판의 정공법이 된다면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답보할 수 없다.

E. 하버드는 “하찮은 정신들은 비상한 것에 위대한 정신들은 하찮은 것에 관심이 있다”고 한다. 정치권이 책임정치를 하지 않는 한 우리나라 3당은 항상 비상대책위원회만 만들 것이다.

R. 하크니스는 “위원회란 자격 없는 사람들 가운데 무성의한 사람들을 뽑아 불필요한 일을 하는 조직이다”라고 한다. 우리나라 정당의 비상대책위원회에 적합한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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