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219년 오(吳)나라 장수 여몽이 형주 지역을 급습해 관우를 살해하였다. 유비는 이 소식을 듣고 오나라에 대해 이를 갈았다. 이듬해 75만 대군을 이끌고 오나라 공격에 나섰다. 그런데 출발 직전에 장비가 살해되었다. 장비의 포악함을 견디다 못한 부하들이 장비를 죽이고 오나라로 투항한 것이었다. 마침내 유비는 원한이 폭발하였다. 단숨에 오나라를 공격하여 무현과 자귀 지역을 점령하였다.

이에 오나라 손권은 육손(陸遜)을 대도독으로 임명하여 촉군을 방어토록 하였다. 육손은 5만 군사를 이끌고 이릉에서 진을 치며 촉군을 기다렸다. 며칠 후 촉군은 7백리 먼 길을 달려와 이릉에 당도하였다. 하지만 사기가 충천하였고 조금도 지친 기색이 없었다. 게다가 양자강의 빠른 물길을 이용해 촉의 수군이 당도하자 그 기세가 더욱 대단하였다.

오나라 장수들이 육손에게 건의하였다.

“지금 적이 먼 길을 달려왔을 때 공격하면 그 기세를 꺾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육손은 이에 반대하였다.

“지금 촉은 수군이 합류하여 그 기세가 왕성하다. 사기가 왕성한 적은 피하는 것이 병법의 기본이다. 이럴 때는 적의 정세 변화를 살피면서 아군의 사기를 높이는 것이 상책이다. 적은 7백리를 단숨에 달려왔기 때문에 며칠이 지나면 피로가 한꺼번에 엄습해올 것이다. 그때를 기다려 공격하면 반드시 이긴다.”

하지만 장수들은 육손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았다. 촉의 대군이 무서워 겁을 먹고 일부러 싸움을 회피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육손은 그런 정황에 개의치 않고 그저 튼튼히 수비로 일관하였다. 촉군의 도발에 전혀 응하지 않았다. 이때 유비 진영은 50여 개의 영채를 한 줄로 이어서 배치하고 있었다. 이는 유사시에 서로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육손이 이것을 보고 전략을 생각해냈다. 이릉 지역 지리에 밝은 장수를 앞세워 여러 조의 게릴라 부대를 편성하도록 했다. 그리고 밤이면 게릴라 부대를 활용해 촉군 이곳저곳을 공격하여 불을 지르고 도망치는 전술을 사용하였다. 이로 인해 촉군은 잠시도 편히 쉬지 못했다. 병사들은 자지도 못하고 쉬지도 못하자 모두 불만이 가득하고 피로가 극에 달했다. 이렇게 한 달 가까이 지난 어느 날, 육손은 긴급히 참모회의를 열었다.

“이제 때가 왔다. 촉군이 우리보다 병력이 우세하다고 하지만 지금은 피로에 지쳐 사기가 땅에 떨어졌다. 지금 우리가 맹공을 가하면 분명히 이긴다.”

육손의 지휘에 따라 오나라 병사들은 마른 풀을 한 단씩 들고 촉나라 진영으로 돌진했다. 그리고 곳곳에 불을 질렀다. 그날 밤 바람은 특히 거셌다. 촉나라 진영은 삽시간에 불바다가 되고 말았다. 그 기회를 이용해 육손이 전 병력을 이끌고 쳐들어갔다. 혼란에 빠진 촉의 병사들은 무참히 무너졌다. 유비는 간신히 근처 백제성으로 도망쳤다. 이 패배로 실의에 빠진 유비는 그 해 63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이는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 있는 이야기이다.

이일대로(以逸待勞)란 편히 쉬면서 힘을 비축했다가 피로에 지친 적을 맞아 싸우면 이긴다는 병법의 하나이다. 남의 인생을 살아가는 자는 늘 바쁘고 서두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자신의 인생을 사는 자는 항상 여유롭기만 하다. 가끔은 자신이 남의 인생을 대신 살고 있지는 않은지, 자신의 인생을 제대로 살고 있는지 한 번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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