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연 전 청주예총 부회장

고요한 산골짜기 양지바른 풀섶에서 다람쥐 한 마리가 평화롭게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바람이 불더니 도토리 하나가 떨어져 잠자던 다람쥐의 콧등을 맞췄다. 잠결에 깜짝 놀란 다람쥐가 뛰니, 옆에서 잠자던 다람쥐들이 모두가 뛰기 시작하였다. 다람쥐가 뛰니 토끼도 뛰기 시작하더니, 노루도, 너구리도, 늑대, 온 산의 짐승들이 모두가 덩달아 뛰었다.

이를 지켜본 백수의 왕 사자가 늑대에게  물었다. “왜 뛰느냐?”라고! 그러나 “모른다!”고 답하였다. 다음에는 노루에게 물어봐도, 토끼에게 물어보고, 모두가 물어봐도 역시 모른다고 답했다. 이 이야기에서 “왜 뛰는 가?”라는 질문은 우리들에게도 묻고 싶다. 왜 우리는 뛰고 있는가? 우리는 바쁘기만 한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공시족’이라고 한다. 보도에 의하면 지난 일년 사이에 ‘공시족’이 13만명이 늘어나 50만명이 넘었다고 한다. 전남 곡성에서의 ‘공시족’ 사건도 우리 현실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안타까운 것은 젊은이들에겐 꿈이 없다는 것이다. ‘왜 공무원이야만 하는가?’라고 물으면, ‘안전하고 편하니까?’라고 답한다. 그렇다면! 삶의 목적이 단순이 안전하고 편한데 있는가?! 

현대인은 ‘욕구’를 위해서 산다. 이를 위해 자꾸자꾸 밖으로  달려가기만 한다. ‘재(돈), 권(권세), 명(명예), 애(사랑, 사람)’! 밖에서는 아무리 구해도 결국에는 고통이 된다. 왜 그런가? 욕망이란 끝이 없기 때문이다. 욕망을 성취하는 순간 새로운 욕구가 일어나 또 다른 고통이 시작된다. 밖에서 구하면 남들과 비교하기 마련이고, 비교하는 가운데 불행이 싹튼다. 남들이 공무원 하니 나도 공무원해야 한다. 그래서 ‘공시족’이 50만명이 넘었다. 그런데 그들 중 공무원이 될 수 있는 것은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대부분은 불행하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다. 밖으로 달려가는 마음을 안으로 돌이키는 것이다. 이를 ‘반조(返照)’라고 한다. 밖으로 향한 마음을 안으로 돌이켜 내 마음은 내가 바로 잡는 것이다.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만이 자기가 자기의 마음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인간은 위대하다.

“말 장수는 말을 다루고, 활 장수는 화살을 곧게 하고, 목수는 나무를 다루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를 다룬다. 애욕의 물결은 사방으로 퍼져 나가고, 욕정의 덩굴은 이리저리 뻗어나간다. 그것을 알았으면 지혜의 칼로 그 뿌리를 도려내라!” 귀경에 나오는 말이다. 

부질없는 재산과 명예와 권세와 애욕의 물결!  밖으로 달려가는 마음!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를 바로 잡는다. 이를 위해서는 반조(返照)가 답이다. 반조를 통하여 자기를 다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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