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당(唐)나라 현종(玄宗)은 누구보다 정치를 잘 돌보아 20년 동안 태평성대를 이루었다. 하지만 양귀비(楊貴妃)를 만난 이후 정치에서 손을 놓자 간신들이 전횡했고 나라는 혼란스러워졌다. 현종의 타락을 보다 못한 재상 장구령(張九齡)이 직언을 여러 번 올렸으나 소용이 없었다. 그 무렵 학식도 없고 실력도 없었지만 아첨하는 재간만은 출중한 이임보(李林甫)라는 대신이 있었다. 현종은 자신의 비위를 잘 맞추는 이임보가 마음에 들었다. 그를 재상에 임명하기 위해 장구령을 불러 의논했다. 장구령은 솔직히 아뢰었다.

“재상의 자리는 나라의 안위와 관련된 막중한 자리입니다. 이임보가 재상이 되면 장차 큰 해가 닥칠 것입니다.”

이 말을 전해들은 이임보는 이를 갈았다. 얼마 후 이임보는 삭방 지역 현령인 우선객(牛仙客)을 현종에게 추천하였다. 재정 관리에 남다른 재능이 있다는 이유였다. 현종이 장구령을 불러 의논했다. 하지만 장구령은 변방의 일과 조정의 일은 다르다며 반대했다. 이에 현종이 화를 냈다. 이 기회를 틈타 이임보가 아뢰었다.

“인재 기용은 황제의 고유 권한이거늘 재상이 어찌 감히 나선단 말입니까? 장구령은 너무 구식에만 매여 있어 천하의 국면을 보지 못합니다.”

현종은 끝내 장구령을 해임하고 이임보를 재상으로 임명하였다. 재상이 된 이임보는 먼저 신하들이 의견을 올리기 위해 황제를 알현하는 것을 금했다. 한번은 대신 중 하나가 현종에게 상소를 올리자 다음날 변경으로 발령이 났다. 이임보는 자신보다 능력 있는 신하들을 이런 식으로 모두 내쫓았다. 그런데 그는 제거하려는 자에게는 항상 온화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다. 당한 자들은 뒤통수를 맞고서야 이임보의 인간됨을 알았으나 이미 늦은 후였다.

엄정지(嚴挺之)라는 대신 또한 변경으로 쫓겨났다. 어느 날 현종이 문득 엄정지 생각이 나서 이임보에게 물었다. “엄정지는 지금 어디에 있소? 재능이 출중한 자이니 조정으로 불러 드리시오.”

이임보는 곧 엄정지의 동생을 찾아갔다.

“자네 형님이 조정으로 돌아오고 싶어하니 내 그 소원을 풀어주겠소. 자네 형님더러 병이 들었으니 돌아가 치료받고 싶다고 상소를 올리도록 하시오. 그 다음 일은 내가 알아서 처리하겠소.”

엄정지는 동생의 말대로 상소를 올렸다. 이임보가 이를 현종에게 아뢰었다.

“엄정지는 지금 중병으로 고생하고 있답니다. 그러니 어떻게 벼슬을 맡을 수 있겠습니까? 참으로 아까운 인재이나 애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현종도 탄식을 하며 뜻을 접고 말았다. 이후 신하들은 간교하고 음흉한 속내를 가진 그를 깊이 경계하게 되었다. 현종은 그 뒤 장구령의 예언처럼 안록산의 난으로 크게 화를 입고 말았다. 이는 ‘신당서(新唐書)’에 있는 고사이다.

구밀복검(口蜜腹劍)이란 입으로는 달콤한 말을 하지만 속셈은 칼을 감추고 있다는 뜻이다. 자신의 영달을 위해 경쟁자를 몰래 해치는 자를 비유해서 쓰는 말이다. 모르는 자나 오랜 만에 찾아오는 자가 베푸는 호의와 선심과 미소를 경계하라. 당신의 재산과 인생을 망치려 드는 음흉한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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