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해피마인드 아동가족 상담센터 소장

고통의 극점에 서 있을 때 사람들은 상담실을 노크한다. 자신의 의지로 상담실을 찾아오는 사람은 그래도 힘이 있는 사람이다.

자신을 둘러싼 고통을 해결해보고자  마음을 내고 용기를 내어 문을 두드린다. 내게로 오는 사람들은 이미 골고루 담은 도시락을 싸들고서 내면의 고향으로 소풍을 온 것이기에 사실 싸온 도시락을 같이 먹기만 하면 된다. 당신이 싸온 도시락을 좀 더 편안하게 먹을 수 있는 장소를 탐색하는 것은 나의 일이기도 하다. 도시락을 앞에 두고서 눈이 빨개지도록 눈물을 뚝뚝 흘리는 사람들은 이미 자신이 변화해야함을 알고 있다. 자신의 문제나 상대의 문제의 경중을 따지며 때로는 상대가 더 문제임을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하며 신음하는 분들도 있다.

사실, 우리는 문제 속에서 산다.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그건 살아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 문제를 풀어내기 위해 우리는 이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일이 없다면 무슨 재미이겠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문제라고 생각하는 그 속에 매력이 같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고통이라고 생각한 그 솥에 자신의 심리적 허기를 채워주는 영양가 있는 음식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지금, 당신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그 문제는 새로운 세계로 나가는 통로가 될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삶에서 최선을 다한다, 자신의 삶을 위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고 있다. 다만 그것이 나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답이라고 생각하기에 상대의 노력이 보이지 않은 것이다. 자신이 쓴 답지를 보느라 상대의 답을 읽을 겨를이 없다.

상담실을 찾은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이만큼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와 달리 노력하지 않는다는 호소를 한다. 심지어는 나와는 정반대의 지점에 있다고 한탄한다. 이러한 호소를 듣고 있노라면 내입에서 ‘당신의 말을 충분히 천천히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겠군요’라는 말이 저절로 흘러나온다. 그토록 자신의 삶을 온몸으로 살아낸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괜스레 눈물이 고인다.

그러나 그들은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답게 상대방의 변화를 기대하는 답지를 내게 내밀며 맞춤형 상담을 요구하기도 한다.

‘좋다’ 그가 열심히 온몸으로 살아온 역사이기에 개인의 역사에는 그게 어떠한 빛깔을 가지든 빛나는 것이기에 박수를 칠 준비가 되어있다. 그러나 자신이 변화하지 않고 상대에게 변화를 요구하는 것은 공정한 게임이 아니다. 또한 내가 이만큼 바뀌었으니 당신도 이만큼 바뀌어야하는 것은 거래이지 사랑하는 자세가 아니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변화를 두려워한다. 변화에 대한 두려움은 무의식의 본질이기도 하다. 죽음 앞에 서거나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일들 속에 휘말릴 때 비로소 우리는 마음을 보기 시작한다.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무의식은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장에서만 자신을 변형시킨다. 답은 하나라고 생각한 질문을 다시 읽기 시작한다. 다른 답을 생각해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질 때 호흡은  편안해진다.

우리들은 ‘이게 문제야’라고 자신을 향해 끊임없이 평가하고 비난하는 자기 내부의 눈을 가지고 살아간다. 자신을 감시하는 그 눈을 감을 때 어제와는 분명히 다른 세상을 경험할 것이다 그리고 ‘그래 그래 그게 나야, 그래 그럴 만하지’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게 무엇이든지 어떠한 일이든지 기꺼이 그곳으로 소풍을 떠나지 않겠는가, 기쁘게 맞이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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