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며칠 전 제자 하나가 교무실로 필자를 찾아왔다. 제자는 4년 전 필자가 근무하는 방송통신고에서 수업을 받았고 지금은 대학교 4학년 졸업반이다. 제자라고 부르고는 있지만 필자는 그렇게 부르는 게 조심스럽다. 실은 그 제자의 나이가 필자와 엇비슷하기 때문이다.

제자는 뒤늦게 방송통신고의 문을 두드려 공부를 하고 드디어 졸업을 한 뒤에는 쉰이 훨씬 넘은 뒤늦은 나이였지만 4년제 대학에 입학하여 어렵게 공부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면서 뒤늦게나마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 준 방송통신고에 늘 고마움을 느껴 학교를 다니던 당시의 선생님들을 떠올리곤 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아직 학교에 남아있는 필자를 찾았다는 것이다. 고마웠다.

필자는 제자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때의 모습이 그려졌다. 제자는 몸이 좋지 않았다. 나이도 나이려니와 허리에 디스크도 있고 다리도 편치 못해 늘 아파하며 잘 걷지 못하였다. 그래도 결석 한번 하지 않았다. 출석 수업일에는 학교에 일찍 등교하여 열심히 수업을 받았다. 첫 시간부터 마지막 시간까지 선생님의 말씀을 놓치지 않으려고 한 순간도 방심하는 법이 없었다. 그 제자가 있는 반에 수업을 마치고 오신 선생님들은 아주 열심히 공부하는 어르신 학생 때문에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자는 방송통신고에 입학할 때의 일을 떠올리며 입학의 기회를 준 방송통신고에 감사한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제자가 큰 결심을 해 방송통신고에 입학을 하기로 하고 학교를 찾은 때가 마침 방송고 입학 마감일이었다는 것이다. 그냥 원서만 쓰면 되는 줄 알고 왔던 그 제자는 적잖이 당황했다고 한다.

쉰이 넘어서 꿈에도 그리던 고등학생이 되어 보자고 찾아왔는데 막상 입학하는데 필요한 서류인 주민등록등본이며 중학교 졸업증명서 등이 전혀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마감 1시간을 앞두고 급하게 팩스 민원을 신청해 겨우 겨우 서류를 준비했는데 아뿔사! 지갑을 뒤져보니 입학금 낼 돈 마저 없더라는 것이었다. 보다 못한 행정실 직원이 나중에 받기로 하고 입학금을 대납해 주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공무원의 도움으로 학업을 잇게 된 제자는 방송통신고를 거쳐 대학교 4학년이 된 것이다. 제자는 그렇게 학업의 기회를 잇게 해준 그 공무원의 선행을 영원히 잊지 못하겠노라고 말했다.

대학생이 되고 제자는 이를 깨물며 학업에 전념했노라고 말했다. 손주 벌 되는 학우들의 눈치를 보며 그들과 어울리려 애쓰면서 어떻게든 공부에서도 모범을 보이려 애를 썼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새벽 2, 3시가 되기까지 공부하는 것은 예사였다고 한다. 방송통신고에서 공부할 때처럼 열 번 스무 번 다시 보면서 알 때까지 다시 보고 또 다시 보고를 반복했더니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점도 점점 좋아지더라는 것이다. 이제는 젊은 학우들 앞에서 당당히 발표도 하고 그러다가 잘했다는 박수도 받는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제자를 힘들게 하던 허리와 다리의 아픔도 공부에 전념할 때는 다 잊히더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제 대학교 졸업을 1학기를 앞두고 제자는 말했다. “늘 방송통신고 졸업생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다! 뒤늦게 공부했지만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최선을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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