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755년 당(唐)나라 현종(玄宗)무렵, 동북 국경지역을 방어하던 안녹산이 반란을 일으켰다. 변경의 이민족과 자신의 병사를 규합하여 20만 대군을 이끌고 단숨에 관군의 요충지 낙양을 점령하였다. 이어 부하 장수 윤자기(尹子奇)에게 하남지역을 점령하도록 명했다. 윤자기는 10만 대군을 이끌고 하남 수양성을 포위하였다. 그 무렵 수양성을 지키는 관군 장수는 현령인 장순(張巡)이었다. 하지만 군사라고는 고작 칠천 명에 불과하여 성을 지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장순은 고민에 빠졌다. 병력도 병력이지만 군량미마저 바닥나 위기에 처하고 만 것이었다. 도무지 반란군과 대항하여 싸울 수 없는 처지여서 성문을 굳게 닫고 지키기만 하였다. 그리고 적을 물리치기 위한 계책을 찾고자 생각에 잠겼다. 그때 장순의 머릿속에 두보(杜甫)의 시, 전출새(前出塞)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적을 잡으려면 그 우두머리를 먼저 잡아라!”

압도적으로 병력이 많은 적을 물리칠 수 있는 전략이라면 적장을 제거하는 방법뿐이었다. 적장이 제거되면 분명 적은 세력이 꺾일 것이다. 그러면 적은 혼란에 쌓일 것이고, 그 틈을 노려 공격하면 승산이 충분하다고 판단하였다. 그런데 전략을 찾고 보니 또 다른 문제에 부딪히고 말았다. 개미떼처럼 움직이고 있는 적의 10만 대군 가운데 꼭꼭 숨어있는 적장 윤자기를 찾아내기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장순은 다시 머리를 짜낸 끝에 드디어 방법을 찾아냈다.

부하들에게 갈대로 화살을 만들도록 지시하였다. 그리고 적이 성을 공격해오자 갈대 화살을 날리게 했다. 관군이 날린 화살이 반란군에 적중하였음에도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반란군 병사가 갈대 화살을 집어 들고 서둘러 진영 어디론가 달려갔다. 누군가가 나타나자 병사는 무릎을 꿇고 화살을 바치는 모습이 성벽 위에서 분명히 보였다. 아마도 관군은 이미 화살이 모두 소진되었다는 것을 알리는 것 같았다. 장순은 그 광경에서 저 자가 분명 윤자기임을 확신했다. 이어 활쏘기 명사수들로 구성된 부대에 명했다.

“적장은 바로 저 체격 좋은 저놈이다. 그러니 저 놈을 향해 집중 사격하라!”

관군의 명사수들이 일제히 화살을 날렸다. 이번에 화살은 갈대로 만든 것이 아니라 당연히 진짜 화살이었다. 그중 한 대가 적장 윤자기의 오른쪽 눈에 정확히 꽂혔다. 윤자기가 고통스럽게 쓰러지자 장순의 예상처럼 적은 순식간에 대열이 무너졌다. 그 많은 병사들이 혼란에 휩싸여 오합지졸로 변하고 말았다. 장순이 이 틈을 놓치지 않고 곧바로 공격에 나섰다. 반란군은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다급해진 반란군은 서둘러 후퇴하고 말았다. 이로써 장순은 가까스로 수양성을 지킬 수 있었다. 이는 ‘신당서(新唐書)’ 장순편에 있는 이야기이다.

금적금왕(擒賊擒王)이란 적을 사로잡으려면 적의 우두머리부터 사로잡아야 한다는 말이다. 적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우두머리가 쓰러지면 한 순간 오합지졸이 되고 만다는 36계에 있는 싸움의 기술이다. 출세는 높은 자를 만나야 빨라지고, 승부는 우두머리를 제거해야 빨리 끝나는 것이다. 세상과 싸워야 한다면 공연히 골목싸움에 혈기를 낭비하지 말고, 큰 뜻을 품고 높은 곳에서 싸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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