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시인 충북예술고 교사

1997년의 구제금융은 취약한 한국사회의 기반을 완전히 흔들어놓았습니다. 시간이 좀 흐른 뒤에 그 사건의 뒤에는 미국의 금융자본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10년이 지나 2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도 한국 사회는 그 요동치는 격랑에서 한 발짝도 못 벗어난 채 어디로 갈지 모르는 난파선처럼 떠도는 중입니다. 그 만큼 구제금융은 그 이전의 한국과 그 이후의 한국을 완전히 딴판으로 바꾸어놓았습니다. TV를 교과서로 삼아서 사는 우리 숙부님도 ‘미국놈들이 한국 기업을 홀딱 베껴먹은’ 것으로 IMF를 기억합니다.

구제금융 이후의 한국은 외국 기업과 금융자본들이 미국식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한국의 경제 사회 구조를 몽땅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돈줄을 쥔 미국의 입김대로 조정은 이루어졌고, 이후 한국은 미국에서 앓는 모든 모순을 다 앓으면서 사회 곳곳으로 독버섯 같은 갈등과 가난이 퍼져가는 중입니다. 그리고 슈퍼마켓까지도 잡아먹은 거대 유통업자들이 나타나 동네 골목까지 빨판을 대고 빨아댑니다. 실업자는 늘어나고, 서민들의 주머니를 털어서 기업들에게 돈을 돌려도 기업들은 돈을 풀지 않습니다. 직장 잡는 일이 하늘의 별따기가 되고, 청년 실업은 시간이 갈수록 늘어납니다. 이것이 구제금융 이후 한국사회에 뿌리내린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구제금융으로 혼란을 겪고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할 즈음에 이 책이 나왔습니다. 다른 책은 믿을 수 없습니다. 그 무렵의 경제이론과 경제학자들라는 것이 모두 미국 물을 먹고 사상까지 미국으로 물든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저지른 실수를 그들의 입을 통해서 설명 듣는다는 것은 어쩐지 이상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 때 이 책을 우연히 서점에서 만났습니다.

아주 얄팍한 책이지만 한국 사회의 속성을 아주 잘 파악한 책이어서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물론 그 후로 벌써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서 구제금융에 대한 많은 책들이 나왔겠지만, 이 책은 유럽 쪽의 학설을 참고한 책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미국 쪽에서 보지 못하는 탈출구를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장래를 걱정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가 저출산과 청년 실업입니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기반을 흔들어놓을 수 있는 문제라는 점에서 단순히 한 시대의 문화현상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의 바탕에 구제금융과 세계 금융자본이 깔려있다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금융자본의 본고장인 미국에서는 리먼브라더스 사태 이후 금융자본을 통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한편, 경제침체를 극복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정책으로 제조업 지원 정책을 들고 나와서 어느 정도 성공했습니다. 실물경제가 뒷받침 되지 않으면 금융자본의 움직임은 실물경제를 흔드는 폭력성만 난무하게 된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오바마 정부의 이런 정책으로 미국은 최근(2015) 경기회복세가 뚜렷해 금리인상을 추진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정부가 시장을 무한정 방치할 수는 없다는 해묵은 결론으로 돌아온 셈입니다. 이 책은 경제에 대한 답이 아닙니다. 경제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다시 한 번 던져보게 하는 책입니다. 오래된 책이지만 경제를 보는 눈을 한 번 생각케 한다는 점에서 가끔 생각나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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