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승의 자잘한 세상이야기]밤꽃이 피면
[정연승의 자잘한 세상이야기]밤꽃이 피면
  • 충청매일
  • 승인 2016.06.14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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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충북작가회의 회장

올해도 어김없이 밤꽃이 피었다. 아내는 밤꽃을 보면 또 할머니 얘기를 할 것이다. 그리고는 아쉬움 가득한 표정을 지을 것이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도 이맘때였다. 어느새 삼십 년이 되었다. 할머니 상여가 나가던 그날, 집 앞 개울가에 줄지어 서있던 늙은 밤나무들은 밤꽃을 흐드러지게도 피웠었다. 갈래머리처럼 치렁치렁 늘어진 밤꽃이 할머니 저승길을 늦추기라도 하듯. 하얀 밤꽃이 상복 같다고 생각한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내가 할머니를 처음 뵌 것은 대학을 졸업했던 그 이듬해였다. 양가의 결혼 허락을 받고 아내와 함께 시골에 계시는 할머니께 인사를 갔던 날이었다. 먼지가 뽀얗게 일어나는 신작로에서 버스를 내려 마을로 들어가며 나는 그곳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백두대간이 지나는 늘티 아래 견훤산성이 개울 너머 닿을 듯 보이는 마을이었다. 어려서 고향을 떠나왔던 나는 그곳이 고향처럼 느껴졌다. 그날 할머니를 처음 뵌 곳은 고추밭이었다. 고추가 한참 붉어가는 때라 할머니는 밭에 계셨다. 고추를 따던 할머니께서 손녀딸을 발견하고는 손뼉을 치며 황급한 걸음으로 고랑을 나오셨다.

아내는 할머니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아내는 할머니를 엄마처럼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내는 어려서부터 할머니 손에 컸다. 공직에 계셨던 장인어른의 잦은 출타로 아내는 고향 할머니 댁에 맡겨졌다. 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고향을 떠나기는 했지만, 할머니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은 어찌할 수 없었는가보다. 할머니께서 이따금 청주에 나왔다 돌아가시거나, 방학이 끝나 청주로 돌아와서는 며칠씩 가슴앓이를 하곤 했단다.

아내의 그런 가슴앓이는 결혼을 하고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그곳을 찾았다. 나는 잃어버린 고향을 찾아가는 것 같아 마음이 들떴고, 아내는 엄마처럼 그리운 할머니를 보는 것이 좋아서였다. 그런 우리를 할머니는 처음 만났던 그날처럼 손뼉을 치며 맞으셨다. 그렇게 우리는 결혼 후에도 몇 년 동안 할머니 댁을 오가며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께서 편찮으시단 연락을 받고 병원에 모시고가기 위해 그곳으로 갔다. 그때까지도 우리는 할머니의 병환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연세도 일흔을 갓 넘기신 상태였고, 치료만 받으면 곧 쾌차하실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할머니는 그날 이후 다시는 고향집으로 돌아가시지 못했다. 수술을 받으신 할머니는 끝내 깨어나시지 못했다. 고향집을 떠나신지 채 열흘도 되기 전이었다. 그렇게 허망하게 할머니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먼 길을 떠나셨다.

아내는 내내 울기만 했다. 상여에 타신 할머니께서 평생을 사셨던 고향집을 둘러보실 때도 아내는 그 뒤를 따르며 울기만 했다. 나는 그런 아내를 보며 아내는 밤꽃에 정신 쓸 겨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밤꽃이 필 때면 ‘이 때쯤 돌아가셨는데’라며 힘없는 목소리를 했다. 그러고는 허허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 아내를 그저 잠자코 지켜만 볼뿐 나는 아무것도 해줄 것이 없었다. 그리움을 되새기는 것은 좋지만, 아내의 그런 표정을 보기 싫어 아내 스스로 밤꽃이 피었다는 사실을 알아챌 때까지 밤꽃 이야기를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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